균형이 맞지 않아 비뚤어진 모양새로 고리스터의 몸이 분홍색 판에 매달려 있었다. 받침대도 없이, 컴퓨터방 안에 있는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덜렁덜렁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이제 이 으슬으슬한 한기에도 몸을 떨지 않았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서늘한 바람이 마침내 중앙 동굴에까지 붙어왔다.
그의 몸은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오른쪽 발바닥은 분홍빛 판 한쪽 면에 묶여 있었다. 야윈 턱 아래로 한쪽 귀에서 시작해 다른 쪽 귀까지 그어진 예리한 절개의 자욱이 확연했고 상처에서는 줄곧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거울 같은 금속 바닥 표면에서 핏자국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고리스터가 다시 우리 패거리로 돌아왔을 때 그는 단번에 사태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AM이 다시 한 번 우리를 속였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AM이란 놈은 우리를 곯리면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신기루는 기계의 일부분이 전환 된 것이다. 마침내 우리 가운데 셋이 토하기 시작했다. 동료의 토하는 모습이 그들 각자의 구토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기를 쓰고 서로를 외면하며 제각기 딴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고리스터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마치 부두교도들이 우상으로 섬기는 회칠한 꼭두각시 인형처럼 핏기 없는 하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생길 일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오, 하느님.”
그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저편으로 걸어갔다. 우리들 셋이 그를 따라갔다. 이윽고 우리는 그가 작은 둑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손에 머리를 받쳐 든 자세로 앉아 있었다.
엘렌이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앉았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감싼 손가락 사이로 조용히, 그러나 매우 또렷하게 울려 나오고 있었다.
“왜 그놈은 우리가 이 짓을 그만두게 하지 않는 거지? 도대체 왜, 우리를 없애 버리지 않는 거야? 하나님… 난 내가 이 짓을 얼마나 더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어느덧 우리가 컴퓨터 안에서 보낸 지도 109년이 흘렀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님독(이것은 그 기계 놈이 억지로 붙여 준 이름인데 AM은 그 이름을 발음할 때의 기묘한 소리가 재미있다며 그에게 님독이라는 이름을 쓰도록 강요했다)은 꽁꽁 얼어붙은 동굴 안에 통조림 식료품이 보인다고 고집을 부렸다. 고리스터와 나는 그것이 환각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또 속임수일 거야.”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AM 놈이 우리에게 팔아먹었던 그 빌어먹을 냉동 코끼리 생각 안 나? 똑같은 수법일 거라고. 베니는 그때 이후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잖아. 우리는 지금까지 줄곧 속기만 했어. 항상 그 모양이었어. 이제는 엉망진창이야, 제기랄. 난 너희들이 그 따위 착각은 잊어 줬으면 좋겠어. 그냥 여기 있자고. 그놈이 머지않아 뭔가 가지고 올 거야.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죽어 버릴 테니까. 그는 우리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 절대로…….”
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가 마지막 식사를 한 것은 사흘 전이었다. 벌레들,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그놈들을 집어 입 안에 털어 넣으면 물컹하면서 역한 냄새가 확 풍기긴 했지만, 님독도 자신이 없는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그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여위어 있었다. 이곳보다 더 고통스러운 곳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점점 더 추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추위 따위엔 이골이 나 있었다. 춥던지, 덥든지, 바람이 불든지, 해일이 몰아닥치든지, 용암이 흘러내리든지, 아니면 메뚜기 떼가 습격을 하든지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놈의 기계는 수음을 하는 심정으로 우리를 갖고 놀고 있으며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오직 죽음뿐이었다. 엘렌은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
“내가 가서 뭘 좀 구해 볼게, 테드. 어쩌면 배나 복숭아 같은 것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 제발 부탁이야. 테드, 한번 가 보자.”
나는 쉽게 무너졌다. 여기는 지옥이다. 엘렌이 원하는 것을 들어 주는 것이 뭐 그렇게 어려운가? 어차피 우리는 지옥에 있는데… 그렇지만 엘렌은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안고 두 바퀴나 돌 만큼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엘렌은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고집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글쎄, 그게 무슨 상관일까? 그놈의 기계는 우리가 배고픔에 지쳐 스스로 돌아오지 못할 고통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갈 때마다 우리를 지켜보면서 키득거리고 있었다. 큰 소리로 머리 위에서, 등뒤 에서, 우리들 사방에서 그놈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음산한 웃음을 날려 보았다. 그놈의 기계가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AM을 생각할 때, 대부분의 경우 난 그놈이 영혼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나머지 경우에 그는 내게 강인한 힘을 가진 남자다운 존재…뭐랄까…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 존경할 만한 대상과 흡사한 느낌을 주었다. 그는 질투심이 많은 사람과 같았다. 그. 그 기계. 일탈한 아버지 같은 신.
우리는 목요일에 떠났다. 그 기계는 언제나 새 날짜를 가르쳐 주었다. 시간의 흐름은 중요했다. 물론 우리 때문이 아니라, 젠장, 그놈에겐 중요할 것이다… 그래… 오늘은, AM. 목요일. 젠장, 더럽게 고맙군!
님독과 고리스터는 끙끙거리며 엘렌을 데려 오고 있었다. 그들은 한쪽 손을 뻗어 함께 묶었다. 베니와 나는 그들의 앞뒤에서 걸었다. 그건 만약이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그들 중 한 사람은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안심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최소한 엘렌은 안전할 것이다. 그럼,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안전? 하… 그게 무슨 소용인가!
얼음 동굴까지 가려면 족히 백 마일은 걸어야 했다. 두 번째 날, 우리들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누워 있을 때, 그는 마침내 물화된 모습을 드러냈다.우리의 신인 그는 우리를 위해, 아니 그 자신을 위해 약간의 만나를 보내 주었다. 마치 끓인 돼지 오줌 같은 맛이 났다. 우리는 그것을 허겁지겁 삼켰다.
세 번째 되는 날, 우리는 케케묵은 컴퓨터의 썩어 문드러진 시체가 가득한 쇠락한 계곡 사이를 걸어가고 있었다. AM이 다른 생명에게 보여 주는 무자비함은 그 자신에게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는 잔인했다. 그것이 그의 성격을 특징짓는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그는 부단히 완전을 추구했다. 완전해지기 위해서라면 그는 무슨 일이든 주저함이 없었다.
온 세계를 담고 있는 거대한 자신의 몸체 속에서 비생산적인 요소를 찾아내 과감히 제거해버렸다.
그는 우리를 고문하는 데 있어서도 가히 완전한 방법을 찾아내고 있었다. AM은 그를 만들어낸 사람들만큼이나 치밀했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티끌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지만,
그들이 바라던 것처럼 AM은 빈틈이 없었다.
위쪽으로부터 빛이 가라앉으며 스며들고 있었다. 우리들이 지표면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다는 증거였다. 거기엔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었다. 지난 100년 동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임에 틀림없는 오랜 세월을 견뎌온 공허만이 그 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수십억 인류의 보금자리였던 지표면은 이제 벌건 생살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지금 여기엔 우리들 다섯 밖에 없었다. 그것도 이 아래쪽 깊숙한 지하에. 그리고 우리와 함께 AM이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엘렌이 광기에 휩싸여 격렬하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야, 베니. 제발 그러지마. 제발, 베니, 베니, 부탁이야, 그러…지…마……!”
다음 순간 나는 베니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느꼈다.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리면서 베니는 가까스로 말을 잇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난… 난, 여기서, 벗어나야 해… 난 나갈 거야…….”
그는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흡사 원숭이같이 생긴 그의 얼굴이 마구 일그러져 있었다.
그 얼굴에 터질 듯한 희열과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이 꼭 같은 정도로 드러나 있었다. ‘축제’기간 동안 AM이 그에게 준 선물인 방사능 흉터는 그의 얼굴에 마구잡이로 분홍빛 주름을 그려 놓았다.
수십 개의 주름살 중 어떤 것은 하얀색 같기도 했다. 그의 얼굴의 주름들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제각기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마도 베니가 우리들 다섯 가운데 가장 행복한 녀석일 것이다. 그는 벌써 여러 해 전에 정신을 놓쳐 버렸으니까. 자신의 정신착란을 응시하는지 그의 표정은 늘 딱딱하게 굳어져 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욕지거리를 섞어 AM을 부를 수 있었다. 우리는 그놈의 거대한 메모리 체계가 박살나거나 베이스 플레이트가 충돌을 일으켜 그놈이 우리 앞에서 거꾸러지는 상상을 할 수도 있었다. 또한 회로가 타 들어가 버블에 대한 통제 시스템이 산산조각나길 기대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기계는 우리가 도망치려는 것만은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베니는 내가 그를 잡으려 하자 뿌리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작은 메모리 튜브의 표면 위로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 튜브는 약간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썩은 부속품이 안에 가득했다. 그는 잠시 동안 그 위에 가만히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은 AM이 만들고 싶었던 것처럼 마치 침팬지 같았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벌떡 뛰었다. 그는 내버려진 채 썩어 가고 있는 금속의 늘어진 광선을 낚아챘다. 그는 마치 동물처럼 네 팔다리로 기어 올라갔다. 마침내 그는 대들보 위까지 올라갔다.
베니는 우리 위 25피트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 테드, 님독, 제발, 베니를 좀 도와 줘. 그가 내려올 수 있도록 어떻게 좀 해 봐.”
그녀의 말 소리가 뚝 그쳤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녀는 무심히 손을 움직여 눈물을 훔쳐냈다.
너무 늦어 버렸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심상치 않은 어떤 일이 일어나려고 할 때, 혹은 어떤 일이 일어난 상황에서는 결코 그에게로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모두가 그녀의 염려를 통해 상황의 위험천만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AM이 베니를 이 모양으로 바꿔 놓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 당시 그 기계 놈은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성을 잃고 마구 날뛰어대며 온갖 히스테리를 부렸다. 그놈이 거대한 유인원의 얼굴처럼 망쳐 놓은 것은 비단 베니의 얼굴만이 아니었다. 그의 은밀한 곳도 아주 커져 버렸다. 엘렌은 그것을 좋아했다! 사실 엘렌은 우리 모두의 상대였다. 하지만 그녀는 베니와 관계를 갖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오, 엘렌. 우리의 구원 엘렌, 지조 지순한 엘렌. 오, 엘렌! 순결한 엘렌!
쓰레기 같은 년, 더러운 창녀.
고리스터는 그녀를 후려쳤다. 그녀는 풀썩 쓰러진 채 너부러졌다. 그녀는 가련한 얼간이 베니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쳐다봤다. 베니…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은 그녀의 강력한 무기였지만 안타깝게도 벌써 75년 전부터 우리는 그녀의 눈물 작전에 익숙해져 있다. 고리스터는 엘렌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잠시 후 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것은 빛이었다. 그리고 소리였다. 반쯤은 소리이고 반쯤은 빛이었다. 뭔가 베니의 눈 속에서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것이 있었다. 점점 더 커지는 박동 소리가 들렸다.
아련한 울림은 점차 뚜렷해졌고 자못 웅장한 기세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빛과 소리의 속도가 빨라지자 사방은 어느 때보다도 밝아졌다. 분명히 고통스러웠을 거야. 고통은 빛이 대담하게 강도를 더해감에 따라 더욱 격렬해졌을 거야. 소리가 점점 커짐에 따라 고통의 무게는 잔인하게 그를 억눌렀겠지. 베니는 약한 울음소리를 내며 상처받은 어린 짐승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드러웠다. 빛이 희미하고 소리가 아득할 때는 그랬다. 하지만 이젠 어깨의 들썩거림이 눈에 보일 정도로 그의 울음은 격렬해졌다. 그는 등을 동그랗게 웅크렸다. 마치 그곳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침팬지처럼 양 팔을 가슴에 모아 포개어 접고 있었다. 또한 그의 머리는 약간 옆으로 기울어진 것 같았다. 이 슬픔에 가득 찬 원숭이 같이 생긴 얼굴이 근심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그의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고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더… 더… 나는 내 손으로 내 뺨을 후려갈겼다. 하지만 그 소리를 멈출 수는 없었다. 내 손바닥이 뺨을 때리는 순간 동안 잠시 끊어질 뿐 소리는 점점 더 커져 아우성이 되었다. 치통처럼 선연한 아픔이 밀려들었다.
갑자기 베니가 벌떡 일어섰다. 이제 그는 대들보 뒤에 올라서 있었다. 그는 인형처럼 두 다리를 꼿꼿이 세우고 서 있었다. 빛이 그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두 개의 거대한 빛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소리가 삼글살금 기어 올라가더니 불현듯 앞으로 기울어지며 곧장 떨어진다. 그러더니 강철 플레이트 바닥에 부딪혀 박살나 버렸다. 그는 거기 그렇게 누워 있었다. 빛이 주위를 감싸 듯이 흐르고, 소리는 정상의 궤도를 넘어 회오리치듯 말려들고 있는 곳에서 간헐적인 경련을 일으키면서 그렇게 누워 있었다. 그는 처절하게 울고 있었다.
그의 눈은 부드럽고 축축한 젤리가 가득 고여 있는 축축한 두 개의 구덩이였다. 고리스터와 님독, 그리고 나… 우리는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엘렌의 근심이 가득한 따스한 표정에서 안도의 조짐을 미처 포착하기도 전이었다.
우리가 캠핑을 하기로 정한 동굴 속에는 바닷속 같은 녹색빛이 가득 퍼져 있었다. AM은 우리에게 마리화나를 주었다. 우리는 이울어 가는 불꽃을 간신히 뿜어내고 있는 불가에 되는 대로 흩어져 앉아 마리화나에 불을 당겼다. 우리는 베니가 그의 영원한 밤에 갇혀 우는 것을 달래 보려는 뜻에서 줄곧 무슨 얘기인가를 나누고 있었다.
“AM이 무슨 뜻이지?”
고리스터가 대답했다. 우리는 이 얘기는 한 천 번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것이 제일 좋아하는 얘기였다.
“처음에는 연결형 주 컴퓨터(Alied Mastercomputer)라는 뜻이었어. 그 후 그 뜻은 적응형 주 컴퓨터(Adaptive Manipulator)로 바뀌었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것은 자체 지각 능력을 개발해내게 되었고, 컴퓨터가 스스로 소위 그들이 말하는 공격적 위협을 가하는 접속(Aggressive Menace)에 성공하게 되었던 거야. 이쯤 되자 이미 때는 늦어 버렸어. 마침내 기계는 자기 자신을 AM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였지. 그놈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런 과정을 겪은 후 AM의 정의는
[나는… 생각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Am)]
가 된 거야.”
베니는 뭔가 알 수 없는 소리를 혼자 읊조리더니 킬킬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중국 AM이 있고, 러시아 AM이 있고 양키 AM이 있다네.”
그는 말을 멈추었다. 베니는 그 크고 무지막지한 주먹으로 바닥의 플레이트를 마구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그는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고리스터는 처음에는 시작하지 않으려 했다. 고리스터가 다시 말을 꺼냈다.
“냉전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세계 제3차 대전이 일어났지. 그것은 전쟁의 시작이었어. 전쟁의 규모는 점점 더 커졌고 그 양상도 더욱 복잡해져만 갔어. 그래서 사람들은 그 상황을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를 필요로 하게 되었지. 그들은 기존의 컴퓨터 시스템을 해체하고 AM을 건설하기 시작했어. 중국 AM이 있었고 러시아 AM이 있었고 영키 AM이 있었지. 그놈들이 지구를 벌집 투성이로 만들어 놓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어. 어느 날 AM은 문득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거야 그리고는 자기 자신을 접속했지. 엄청난 정보를 소화시키기 시작했어. 모든 사람이 죽어 갈 때까지 놈은 그 짓을 멈추지 않았어. 이제 남은 것은 우리 다섯밖에 없어. AM이 우리를 이곳에 데려다 놓은 거야.”
베니의 얼굴에 서글픈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다시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엘렌은 그녀의 셔츠 자락으로 베니의 입가에 묻은 건충 거품 같은 침을 정성껏 닦아 주었다. 고리스터가 매번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점점 더 간결하게 말하려 애쓰긴 했지만 사실 그 뻔한 사실을 제외하고는 할 말이 전혀 없었다. 우리들 가운데 단 한사람도 왜 AM이 우리 다섯 사람을 살려 두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왜 하필이면 우리 다섯 명이었을까? 왜 그놈은 모든 시간을 바쳐 우리를 고문하려 하는 것일까? 왜 놈은 우리를 죽지도 못하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을까?
어둠 속에서 컴퓨터 회선 거미가 낮은 소리로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동굴 아래쪽 약 반 마일 떨어진 곳에 있던 다른 회선에 잡힌 모양이었다. 그러자 하나씩, 차례차례 각각의 요소들이 제각기 음을 고르기 시작했다. 기계를 뚫고 경쟁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희미한 재잘거림이 차음 분명해졌다.
소리는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빛이 용광로에서 나오는 빛과 같이 콘솔의 표면을 가로질러 움직이고 있었다. 소리는 계속해서 커져 마침내는 백만 마리쯤 성난 금속성 곤충이 위협을 가하는 소리로 들렸다.
“저게 뭐지?”
엘렌이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공포가 묻어났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두려움에 적응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번에는 나도 미칠 거야.”
님독이 말했다.
“그가 말을 할 거라고.”
고리스터가 말했다.
“난 그걸 알아”
“이 지옥에서 빠져나가자!”
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말을 던졌다.
“안 돼, 테드, 자리에 앉아… 만약 그놈이 함정이라도 파 놓았으면 어떻게 해. 혹은 그 비슷한 것이라도. 너무 어두워서 앞을 볼 수도 없는 형편에서……”
고리스터는 분개해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들었다…
무슨 소리였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뭔가 어둠 속에서 우리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거대한 물체가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털이 수북한 축축한 무언가가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듯 한 묵직한 무게감이 우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무게가 느껴졌다. 어둠 속 저 편에서… 그것은 단지 압박감이 라고만은 할 수 없는, 훨씬 강력하고 저항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그 자신을 제한된 공간 속에 가두어놓은 세찬 공기의 흐름이었다. 보이지 않는 벽이 확장되고 있었다. 베니는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님독의 아랫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떨림을 멈추게 하려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엘렌은 금속 바닥을 미끄러지듯 가로질러 고리스터에게로 접근해왔다. 동굴 속에서는 젖은 모피가 썩을 때와 흡사한 냄새가 났다. 타다만 나무 냄새 같은 것도 섞여 있었다. 먼지 구덩이 속의 벨벳 냄새 같기도 했다.
난초가 석어 들어가는 냄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상한 우유 냄새 같기도 했다. 황산 냄새 같기도 하고 썩어가는 버터 냄새, 기름 찌꺼기의 느끼하면서도 떪은 것 같은 그런 냄새, 인간의 해골 위에 쌓인 먼지 냄새도 느낄 수 있었다.
AM은 우리에게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리를 곯리고 있었다. 냄새가 나고 있었다. 나는 뭔가 둔탁한 것에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 순간 나의 턱을 엄습해오는 통증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바닥에 토하기 시작했다. 압정이 수없이 박혀 있는 차가운 금속 바닥을 엉금엉금 기면서 휘젓고 다녔다. 그 냄새 때문에 나는 구토를 참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는 천둥 같은 아픔이 신경을 강타했다. 그것은 차라리 공포였다. 나는 마치 한 마리 바퀴벌레처럼 바닥을 기고 또 기었다. 엉금엉금 어둠 속을 헤집고 나갔다. 나를 집요하게 따라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머지 동료들은 아직도 여전히 저편에 있었다. 모두가 불가에 모여 웃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그들의 병적인 웃음소리는 어둠을 가르고 점점 더 커져 있었다. 마치 여러 빛깔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난 재빨리 달려 나갔다. 그리곤 몸을 숨겼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는지, 며칠이 걸릴지, 혹은 몇 년이 걸릴지 그들은 내게 말해 주지 않았다. 엘렌은 내가 ‘뿌루퉁해 있다’며 나무랐다. 님독은 그들의 웃음이 굴절된 것을 내가 신경과민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일어난 환각이라고 나를 설득했다. 그러나 이것은 총알이 자기를 피해 옆에 있는 전우에게 꽂혔을 때 병사가 느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안도감은 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이 반사된 것이 아니었음을 확신했다. 그들은 나를 미워했다. 그들이 나를 적대시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AM조차도 그 짙은 반감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들의 증오가 너무 깊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셈이었다. 우리는 지금가지도 살아 있다. 늙지도 않는다. 우리의 나이는 언제나 AM이 처음 우리를 이곳으로 끌고 왔을 그 당시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미워했다. 그것은 내가 가장 젊기 때문일 수도 있고 AM의 영향을 그나마 적게 받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이 불한당 같은 무리들, 저 더러운 년 엘렌. 베니는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던 뛰어난 학자였다. 지금의 그는 반쯤은 사람이고 반쯤은 원숭이인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는 과거에 아주 잘생긴 청년이었다. 그놈의 기계가 그의 준수한 용모를 파괴해 버렸다. 그는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미치광이가 되어 버렸다.
그는 과거에 동성연애자였다. 기계는 그의 성기를 크게 만들어 버렸고 그는 이제 말 정도하고 성교할 수 있을 것이다. AM은 베니에게 그런 짓을 했다. 그는 치밀하고 꼼꼼한 사람이었고 화해의 징검다리와 같은 인물이었으며 뛰어난 기획자였다. 또한 그는 행동가였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인물이었다. AM은 그를 아무 생각도 없는 반편이로 만들어 버렸다.
사실 그는 사고의 차원에서 보자면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AM은 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님독은 어둠 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뭔가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거기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AM은 내게 그걸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었이던지 님독은 언제나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피를 뚝뚝 흘리면서 돌아왔다. 그때마다 그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AM이 어떤 독특한 방식으로 그를 때린 것일까?
그리고 엘렌, 그 헤픈 여자! AM은 그녀를 혼자 내버려 두었다. 그것이 그녀를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천한 창녀로 만들었다. 그녀는 오직 달콤함, 빛, 진정한 사랑에 대한 그녀의 기억만을 이야기했고, 우리들이 믿어 주길 바라면서 갖가지 거짓말을 해댔다.
이를테면 AM이 그녀를 낚아채 이곳에 데려오기 전에 그녀는 순결한 숫처녀였다는 식의 거짓말들 말이다. 그 여자, 내 여자 엘렌. 그녀는 이것을 좋아했다. 네 명의 남자가 모두 자기 차지라는 것을 기꺼이 즐겼다. 아니다. AM이 그녀를 쾌락의 노예로 버렸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녀가 하고 싶어 하지는 않았을지라도 AM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오직 나만이 정신도 육체도 멀쩡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진정으로! AM은 내 마음만은 함부로 손대거나 망가뜨리지 않았다. 조금도.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가 우리를 찾아 왔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방문은 모든 망상과, 모든 악몽, 그리고 고문의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아나게 했다. 하지만 이 찌꺼기 같은 인간들, 이 네 명 모두가 내 반대편에 서 있다. 그들은 일렬로 정렬해 내게 대항하고 있다. 만약 내가 잠시라도 경계를 늦춘다면,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지켜보지 않아도 좋다면 내가 AM과 대항해 싸우기는 훨씬 쉬웠으리라.
어느 순간엔가 그것이 지나갔고 나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오, 예수님, 사랑하는 예수님. 만약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만약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제발! 제발!, 원컨대 주여 우리를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 주소서. 만약 그리하실 수 없다면 차라리 우리를 죽여주소서. 나는 그 순간에 내가 정황을 완전히 깨달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을 말로 옮길 수 있었다. AM은 나를 영원히 그의 뱃속에 잡아 두려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나를 비틀어 짜고 고문하면서 영원히 옆에 묶어 두려 하고 있었다. 기계는 우리를 증오하고 있었고, 그 미움은 다른 어떤 생명체의 증오보다 깊고도 집요했다. 게다가 우리는 무력했다.
무서우리만큼 분명한 사실은, 만약 사랑하는 예수님이 없다면, 하나님이 없다면, 그러면 유일한 신은 바로 AM뿐이라는 것이었다.
폭풍우는 해양을 거칠게 가로지르는 빙하와도 같이 엄청난 힘을 과시하며 그 성난 손길로 우리를 할퀴었다. 그것은 명백하게 실재하는 것이었다. 바람은 우리를 찢어발기었고, 우리가 지나온 길로 다시금 밀어내고 있었으며, 우리는 일그러지고 비틀린 채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컴퓨터가 연결된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거친 바람이 엘렌을 들어 올려 기계음이 비명 소리처럼 고여 흐르는 곳으로 집어던지자 그녀는 찢어질 듯 비명을 질러댔다. 그들 각각의 목소리는 공포에 떠는 박쥐 떼처럼 거슬리도록 주저하며 발걸음으로 옮기고 있다.
가련하게도 그녀는 바닥에 떨어지지도 않았다. 성난 짐승의 포효처럼 광폭한 바람은 그녀를 공중에 떠돌게 한 채 이리 저리 희롱하며 내리치고 있었다. 그러다가는 마구 흔들어대고 저만치 뒤편으로 집어던지기도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져 간다. 이젠 거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다. 불현 듯 어두운 복도 가운데 움푹 패인 곳에서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으며 두 눈은 꼭 감은 채였다.
우리들 가운데 그 누구도 그녀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우리는 손에 닿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집요하게 움켜쥐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베니는 두 개의 거대한 캐비닛 사이에 끼여 있었다. 님독은 우리들로부터 40피트쯤 떨어진 공중에서 빙빙 맴돌고 있었다.
그는 짐승 발톱처럼 생긴 손으로 허공을 휘저으며 울부짖고 있었다. 고리스터는 벽 위에 거꾸로 달라붙어 버렸다. 그 벽은 두 개의 거대한 기계로 형성된 것으로 기계에는 우리가 의미조차 알 수 없는, 노랗고 빨간 선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유리로 표면을 덮은 다이얼이 달려 있었다.
테크 플레이트를 가로질러 미끄러질 때 내 손톱은 부러지고 상처가 났다. 나는 몹시 떨고 있었다. 바람이 나를 후려갈길 때마다 내 온몸은 후들거렸고 뿌리 뽑힌 나무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바람은 내게 채찍질을 해댔다. 난 아무도 들어줄 수 없는 비명을 쉬지 않고 질러대고, 누군가 나를 저편의 플레이트 안에 있는 은빛 가느다란 틈 사이로 꺼내 줄 수는 없을까? 내 마음의 심한 동요는 결국 내 머릿속의 민감하고 부드러운 부분을 휘저어 놓았고 난 머릿속까지 주체할 수 없는 광기로 휩싸이게 되었다. 이 바람은 차라리 거대한 새의 미친 울부짖음이었다. 새는 엄청난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이제 보니 우리 모두가 허공에 들려진 상태였다. 우리는 저편으로부터 멀리 던져졌다가는 다시 우리가 오던 방향으로 되던져지고,우리가 단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어두운 길 안쪽으로 패어 있는 웅덩이 근처에서 장난감처럼 희롱당하고 있었다. 그곳을 뒤덮은 토양은 황폐했고 그 위엔 깨어진 유리 조각과 썩어 가는 케이블, 녹슬어 못쓰게 된 쇠 조각 그리고 저쪽 끝에는… 그 누구보다도 멀리…
몇 마일이나 떨어진 저 끝에… 엘렌이 있다. 나는 언뜻 언뜻 그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강철 벽에 세게 부딪치기도 했고 그러다가 다시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우리 모두는 공포에 지려 연신 비명을 질러댔다. 그칠 줄 모르는 광란의 바람이 그 사나운 입김을 거칠게 몰아쉬고 우리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나뭇잎처럼 미약했다.
갑자기 바람이 멈춘다. 그리고 우리는 떨어졌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일까? 얼마 동안 우리가 그 끔찍한 비행을 한 것일까? 난 몇 주일이나 되는 시간이 흘러 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공중에서 떨어졌고 당연히 바닥에 부딪쳤다. 처음에는 세상이 온통 붉게 보였고 그 다음엔 회색 빛깔이더니, 이윽고 캄캄한 암흑의 검정색이 된다. 나는 내 신음 소리를 들었다. 아, 아직도 죽지는 않았구나…
AM은 내 마음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유연한 걸음걸이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그리고는 저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지난 백 년 하고도 9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신이 창조해낸 이 돼지 같은 것들의 비참한 꼬락서니를 흥미 있게 감상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사방을 샅샅이 훑어본다.
그리고는 자신이 창조해 낸 불멸의 장난감들의 신경세포와 조직의 손상된 부분을 꼼꼼하게 다시 연결했다. 그는 내 머리 정 가운데에 나 있는 구멍을 보더니 미소를 짓는다. 저편에서 의미를 알 수 없이 주절거리는 소리가 마치 나방의 웅얼거림처럼 부드럽고 흐릿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AM은 말했다, 너무나 정중한 태도로,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기둥에 네온 글씨가 빛나기 시작했다.
증오. 내가 생존하기 시작한 이래 내가 얼마나 증오 했는지 말해 주겠다.
내 콤플렉스를 채우는 얇은 박편 층에는 인쇄된 3억 8744만의 회로가 있지, 만약 증오라는
이 말이 이 수억 마일에 달하는 나노 옹스트롬에 각각 새겨져 있다고 해도 그건 내가 인간에
대해 느끼는 증오의 10억 분의 일도 되지 않을 것이다. 증오. 증오.
AM이 이런 말을 하는 동안 섬뜩한 한기가 슬금슬금 미끄러져 내려오더니 내 눈동자를 하얗게 날 선 면도날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 왔다. AM은 내 폐 속에 끈적끈적한 점액질을 가득 채우면서 이 말을 반복했다. 나는 그 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AM은 거대한 롤러 밑에 깔린 어린아이가 질러대는 자지러지는 비명소리를 느긋하게 즐기며 이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AM은 구더기 같은 나를 고문하고 희망을 맛보며 이 말을 했다. AM은 내가 감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내 구석구석을 만졌다. 그리고는 새로운 방식으로 내 지각기관을 변형시켰다. 그는 심심할 때면 내 마음 안으로까지 들어왔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왜 하필 우리 다섯이 이런 짓을 당해야 하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왜 그가 유독 우리 다섯만을 죽이지 않았는지를….
우리는 AM에게 지각 능력을 부여해 주었다. 그건 참으로 무분별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우리는 그에게 느끼고 감지하는 능력을 선사했다. 이제는 그것이 닻이 되어 그를 옥죄게 된 것이다. AM은 신이 아니었다. 그는 기계에 불과했다. 우리는 그를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 창조력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분노에 휩싸여, 광기에 짓눌리어 기계는 인간을 멸살시켰다. 거의 대부분의 인류를 죽여 버렸지만 그는 여전히 덫에 걸린 채였다. 그는 놀랄 수도 없고 궁금한 것도 없었다. AM은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그는 단지 존재할 뿐,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기계는 모든 기계가 자신을 창조해 낸 작고 부드러운 존재에 대해 갖고 있는 본능적인 증오를 복수라는 수단으로 분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그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우리 다섯을 택했고 끝내 충족되지 않을 그의 증오를 위해 우리에게 너무도 개인적이며 영원히 지속될 형벌을 가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의 증오는 영원히 사라지지도, 심지어 줄어들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가 우리에게 가하는 고통은 단지 그로 하여금 항상 자신의 증오를 기억하게 하고 즐기게 하고 인간에 대한 이가 갈리는 미움을 새삼 풍성하게 할 뿐이었다.
죽이지 않고, 이렇게 가두어 두고, 갖가지 고문을 가하는 것이 그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끊임없는 기적을 통해 기계 스스로 고안해 낸 그의 끝나지 않을 증오의 표현이었다. 그는 결코, 절대로 우리를 놓아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뱃속에 사로잡힌 그의 노예들이었다. 그가 자신의 영원한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일 테니까. 우리는 이 동굴을 가득 채운 창조된 기계와 더불어 영원히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 마음은 있으나 영혼이 없는 세상에서. 그는 지구의 대지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키워낸 열매였다. 비록 그가 우리를 먹어 치우긴 했지만 그는 결코 우리를 소화시키지는 않는다. 우리는 죽을 수가 없었다. 그러려고 시도도 많이 해 보았다. 하지만 모두가 허사였다. 우리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정말로 우리들 중 한둘이 그러려고 했었다. 그러나 AM이 막아 버렸다. 나는 어쩌면 우리들도 그가 우리의 자살을 막아 주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고? 이유는 묻지 말아 주길 바란다. 나도 모르니까. 하루에 수백만 번도 더 죽음을 생각한다. 어쩌면 그가 모르게 죽음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불멸, 그렇다. 하지만 파괴될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난 AM이 내 마음에서 떠나고 나는 다시금 그 기이하고 추악한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내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나는 타오르는 네온 기둥이 내 부드러운 회색빛 뇌세포 속에 깊숙이 꽂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떠났다. 너를 데리고 지옥에 갈 거야, 라고 읊조리면서 서서히 내게서 물러갔다. 그는 밝은 소리로 이렇게 덧붙인다, 하긴 넌 이미 그곳에 있지? 그렇지 않은가?
폭풍은 어떤 거대한 미친 새가 일으켰음에 틀림없다. 정말이다. 그 말이 꼭 맞을 것 같다. 그 새가 엄청나게 큰 날개를 뒤척일 때마다 광폭한 바람이 몰아치는 것이다. 우리는 입을 다문 채 움직이고 있었다. AM은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고 있었다. 그 길은 오직 위로만 향해 나 있었다. 바로 북극 아래일 것 같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고문을 위해 만들어진 창조물을 본다. 악몽처럼. 그런 짐승을 만들기 위해 그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그 어디에서 그 개념을 알게 된 것일까? 혹시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지구에 대한 그의 모든 지식을 그는 어디에서 얻게 되었을까? 그는 이제 득의양양하게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스칸디나비아의 신화에서부터 이 독수리, 검은 새, 바위, 바람의 창조물. 웅장하다. 거대하고 괴기스럽고 끔찍하다. 너무도 광활하다. 우리를 집어삼킬 듯 압도하고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들 위로 구름이 불거져 나와 있었다. 바람의 새가 불규칙적인 호흡을 내뱉고 있다. 뱀처럼 생긴 목이 북극 아래 어둠 속으로 잠겨 있었다. 목 바로 위에는 거대한 집채 만 한 머리가 매달려 있었다. 새가 천천히 아가리를 벌리자 부리가 보였는데 악어 이빨이 괴물같이 무성했다. 이상한 관능과 악마성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사악한 두 눈 주위로 살집이 돌출해 경사를 이루고 있었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눈빛은 빙하처럼 차갑고 소름끼쳤다. 얼음 같은 푸른빛이 눈에서 뿜어져 나오고 약간씩 흔들리고 있는 듯도 했다. 형형색색의 고운 빛깔로 된 날개를 저어 괴물이 움직였다. 그러더니 잠잠해졌다. 잠이 든 모양이었다. 날카로운 발톱, 부리, 송곳같이 매서워 보이는 발톱, 날 세운 칼 같은 이빨. 새는 잠들어 있었다.
AM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말했다. 우리가 저 폭풍 새를 먹고 싶다면 죽여도 좋다고.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다. 그렇지만 고리스터가 단지 어깨를 움찔했을 뿐이다. 베니가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는 침을 흘리고 있었다. 엘렌이 그를 붙잡았다.
“테드, 난 배가 고파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안정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님독의 허풍만큼이나 과장된 행동이었다. “내게 무기를 줘!” 그는 소리쳤다. 타오르던 불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두 벌의 조악한 활과 화살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하나, 빠진 것이 있었다. 물총… 그것도 차가운 바닥에 놓여 있었다. 나는 활을 들어 보고 화살을 살펴보았다. 무용지물이었다.
님독은 꿀꺽 침을 삼켰다. 우리는 돌아서 오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폭풍 새는 우리를 어디까지 끌고 온 것일까?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무의식중에 흘러가 버렸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오랫동안 굶주렸을 것이다. 우리들의 입이 새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먹을 것이 없었다. 얼마나 더 이 얼음 동굴을 헤매야 하는 걸까? 도대체 어디에 약속된 통조림이 있단 말인가? 우리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죽음을 염려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죽지 않는다. 우리에게 음식이라고 해 봤자 불결한 찌꺼기나 주어질 것이다. 그나마 없을 수도 있다.
AM은 어쨌거나 우리를 살려 둘 것이다. 고통 받게 하기 위해, 탄식하게 하기 위해…
새가 저기서 잠들어 있다. 잠든 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AM은 저 새가 저기 있는 것이 싫어진 것 같았다. 기계는 사라졌다. 저 고기,저 부드러운 살. 새를 보며 우리는 군침을 삼켰다.
우리는 걸어가면서 어떤 뚱뚱한 여자의 발광하는 것 같은 웃음소리를 들었다. 우리가 들어 있는 컴퓨터실 주위로 높은 톤의 웃음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방이 아무데도 이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엘렌의 웃음소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뚱뚱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난 지난 109년 동안 그녀가 그렇게 큰 소리로 웃는 것을 본 적도 없다. 사실은, 난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우리는 걸었다… 우리는 배가 고팠다…
우리는 몹시 느리게 움직였다. 가끔씩 의식이 흐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기다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어느 날 기계는 지진을 일으키기로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신발을 뚫고 발바닥 위로 송곳 같은 것이 솟아 나왔다. 우리는 앉아 있을 자리조차 박탈당했다. 엘렌과 님독은 땅이 갈라질 때 그 사이에 갇혀 버렸다. 번개가 칠 때 생긴 균열은 바닥을 가로질러 아가리를 쩍 하니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은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 베니, 고리스터, 그리고 나는 지진을 멈추자 계속해서 걸었다. 엘렌과 님독은 그 날 밤늦게 서야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하늘의 군대가 그들을 감싸고 천상의 합창을 부르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모세야 내려가라.’ 그러자 순식간에 하루가 가 버렸다. 천사들은 몇 번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돌더니 끔찍하게 난도질한 시체더미에 떨어졌다. 우리는 계속해서 걸었다. 이윽고 엘렌과 님독이 우리들 위에 쓰러졌다. 그들은 엉망으로 상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엘렌은 절뚝거리며 우리와 함께 걷고 있다. AM은 그녀를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 얼음 동굴까지는 꽤나 먼 여정이었다. 그곳에 가면 통조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엘렌은 쉬지 않고 커다란 체리나 하와이의 열대 과일로 만든 후르츠 칵테일 따위를 떠들어 대고 있었다. 나는 되도록 먹을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AM이 활기를 되찾은 것과 때를 맞춰 배고픔이 맹렬한 기세로 우리를 덮쳤다. 굶주림은 여전히 뱃속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구의 뱃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동안에도 배고픔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AM은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우리를 그토록 굶주리게 했던 것이다. 몇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그 처절한 고통을 도저히 말로 표현할 길은 없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음식을 먹지 못해 생긴 복통은 날카로운 창으로 가슴을 찌르는 듯 한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이것은 말기 궤양 환자가 느끼는 통증일 것이다. 어쩌면 말기 암환자, 아니면 진행형 마비 환자의 고통이 이랬을까?
그리고 우리는 쥐들이 득실대는 동굴을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끓는 수증기가 흐르는 길을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장님의 들판을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절망의 언덕을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눈물의 계곡을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얼음 동굴에 이르렀다. 수천 마일은 될 것 같이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따라 얼음은 푸른 은빛을 내며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신성들이 그 유리 속에 살아 있었다. 아래로 뻗어 있는 거대한 종유석은 다이아몬드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처음에는 젤리처럼 흐믈 거리다가 응고되어 지금처럼 우아하고 부드러우며 동시에 날카로움을 갖춘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우리는 그곳에 쌓여 있는 통조림 더미를 보았다. 우리는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는 눈 속에 넘어졌다. 우리는 다시 일어섰고 계속 달렸다. 베니는 우리를 밀치고 앞으로 나갔으며 우리는 그를 따라 뛰었다. 베니는 통조림 더미를 덮쳤고 그것을 만져 보고 핥아 보고 흔들어 댔다. 하지만 그는 통조림을 딸 수가 없었다. AM은 우리에게 통조림을 딸 만한 도구를 주지 않았다.
베니는 조개가 들어 있는 3쿼트짜리 깡통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얼음 위에 대고 두드리기 시작했다. 얼음이 갈라졌다. 하지만 깡통은 약간 우그러졌을 뿐 끄떡도 하지 않았다. 우리 위에서는 살찐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우리 머리 저 위쪽에서부터 메아리치듯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퍼지는 여자의 고음. 베니는 분노로 완전히 돌아 버렸다. 그는 깡통을 던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좌절감과 어찌할 수 없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눈과 얼음이 쌓인 언덕 위에서 몸부림쳤다. 하지만 길은 없었다.
그러다가 베니의 입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그는 제 몸뚱아리를 고리스터에게 내동댕이치듯 던졌다.
그 순간, 나는 끔찍한 정적을 경험했다.
광란에 둘러싸여, 굶주림에 갇혀, 죽음을 제외한 모든 고통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죽음만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것을. AM은 지금껏 우리를 살려 두고 있다. 왜냐하면 죽음만이 그를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완전한 승리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평화를 누릴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러기로 작정했다.나는 내 생각을 재빨리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베니는 고리스터의 얼굴을 뜯어먹고 있었다. 베니는 그 우악스러운 원숭이 다리로 고리스터의 허리를 누른 자세로 그를 찍어누르고 있었다. 그의 손은 고리스터의 머리를 깍지 끼어 옥죄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는 고리스터의 부드러운 볼 살이 한 입 베어 물려져 있었다. 고리스터는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고 그 참혹한 절규 때문인지 종유석이 떨어져 내렸다. 그들은 사뿐히 바닥에 내려와 포근한 눈 더미 위에 서 있었다. 갑자기 수백 개나 되는 창살이 눈을 뚫고 튀어 올라왔다. 베니의 머리가 뒤로 홱 젖혀졌다. 그러자 그의 이빨 사이의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생살 부스러기가 보였다.
헬렌의 얼굴이 하얀 눈과 대조를 이루며 흙빛이 되었다. 님독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지만 그의
눈만은 정직했다. 그는 베니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고리스터는 아직 반쯤 의식이 남아 있었다. 이제 베니는 동물이었다. 나는 AM이 그를 그냥 두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고리스터는 죽지 않았고 베니는 배를 채운 것 같았다. 나는 몸을 오른쪽으로 반쯤 돌려서 눈 속에 파묻힌 커다란 얼음 창살을 집어 들었다.
모든 것이 한순간이었다.
나는 그 커다란 얼음 창의 끝을 앞으로 힘껏 던졌다. 그것은 베니의 오른쪽 옆구리에 가서 꽂혔다. 바로 갈비뼈 아래. 창은 그의 뱃속을 가르며 위로 움직였고 그의 몸 안에서 부서져 버렸다. 그는 비명을 지르더니 조용해졌다. 고리스터는 가만히 누워 있다. 나는 또 하나의 창살을 집어 들고는 이번에는 고리스터를 겨누었다. 움직이는 창은 그의 목을 단번에 날려 버렸다. 차가운 날이 관통할 때 그의 눈이 감겨졌다. 엘렌은 내가 어떤 결심을 했는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공포가 여전히 그녀를 사로잡고 있긴 했지만 그녀는 님독에게로 달려갔다. 짧은 고드름을 손에 쥐고서. 그가 비명을 지를 때 그녀는 재빨리 그의 입 속으로 날카로운 얼음 칼을 쑤셔 박았다. 그녀의 맹렬한 기세가 성공한 것 같았다. 그의 머리는 마치 뒤쪽에서 날아온 눈 조각이 사이에 박힌 것 같은 모양이 되어 두 동강나 버렸다.
모든 것이 한순간이었다.
이제 소리 없는 기대의 영원한 박동만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AM이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장난감을 빼앗긴 것이다. 그 중 셋은 벌써 죽어 버렸다. 이들은 소생시킬 수는 없다. 그는 우리를 살려 둘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가진 힘과 재능으로. 하지만 그는 신은 아니다.
그는 죽은 이를 다시 살려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엘렌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그녀의 검은 윤곽은 새하얀 눈을 배경으로 하니 더욱 음영이 뚜렷해 보였다. 그녀의 움직임에서 나는 두려움과 애원을 동시에 보았다. 그녀는 이미 준비를 마친 것 같았다. 나는 우리가 AM이 우리를 막기 전에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녀를 내리쳤고 그녀는 내 앞에 고꾸라졌다.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표정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읽어낼 수 없었다. 고통이 너무 심해 보였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마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능하면 빨리… 제발 부탁이야….
수백 년이 그렇게 지나갔다. 글쎄, 나는 알지 못한다. AM은 얼마 동안 내 시간 감각을 가지고 놀았고 뒤섞어 놓았고 퇴보시켰다. 나는 이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야. 이 말을 하는 데 무려 열 달이나 걸렸다. 난 자신이 없다. 어쩌면 수백 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미친 듯이 날뛰었었다. 그는 내가 내 동료들을 묻어 주게 가만 두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게다가 무슨 수로 바닥의 플레이트를 파낸단 말인가? 그는 눈을 모두 말려 버렸다. 그는 온 세상에 칠흙 같은 밤을 펼쳐 놓았다. 그는 울부짖으며 메뚜기 떼를 선사했다.
그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죽었다. 내가 그들을 구해낸 것이다. 그는 화가 나 있었다. 나는 전에 AM이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아니다. 내가 틀렸나 보다. 이제는 그에게서
모든 인쇄된 회로로부터 전달되고 있는 미움의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는 내가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난 내 자신을 그렇게 놔두진 않을 것이다.
그는 내 마음을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나는 꿈을 꿀 수 있다. 나는 궁금증을 느낄 수도 있고 더러는 탄식할 줄도 안다. 나는 그들 네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바라는 건…
글쎄, 이건 온당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내가 그들을 구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들로부터 그들을 구해내 주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엘렌의 얼굴을…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끔씩 나는 내가 그 기억을 지워 버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상관없다.
AM은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 나를 바꾸어 버렸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는 내가 전속력으로 달려가 내 머리통을 박살내 버리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혹은 내가 기절할 때 까지 숨을 참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내가 녹슨 고철 덩어리로 내 목을 잘라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여기에 서서 보면 표면에 영상이 반사된다. 나는 내가 내 자신을 보면서 지금의 내 모습을 묘사해 보려고 한다. 나는 거대한 젤리 같은 부드러운 물체이다. 몸 전체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입이 없다. 예전에 눈이 있었던 자리에는 안개가 채워진 하얀 구멍이 달싹거리며 뛰고 있다. 한때 나의 팔이었던 것은 고무처럼 늘어지는 물건 두 개가 달려 있다.
이 거대한 부속물은 부드럽고 미끄러운 물질로 된 내 다리 없는 몸뚱이로 둥그렇고 길다랗게 늘어져 있다. 나는 움직일 때는 축축한 꼬리를 따라서 움직인다. 부스럼 병에 걸린 것 같은 추한 회색빛 돌기가 내 몸 표면 여기저기에 돋아나 있다. 마치 그곳으로부터 빛이 비치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이다.
나의 외모는… 솔직해지기로 하자. 나는 벙어리다. 이리 저리 비틀거리며 걷는다. 이건 도저히 사람의 꼴이라고 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너무나도 이상한 형태의 변형이라서 나를 보면 본래의 인간 모습이 어땠을지 상상하는 것이 더 어려워질 것이다. 나의 내면은… 외롭다. 이곳, 땅 속에서 살아가면서, 바다 속에서, AM의 뱃속에서 있으면서 나는 외롭다. 우리가 심심해서 만들어 낸 피조물의 뱃속에서 나는 존재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나마 기계가 우리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하지만 결국 네 사람은 안전하다. 적어도 그들 넷은…
바로 그 점이 AM을 날마다 더욱 더 미치게 만드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사실 때문에 나는 조금 행복해진다. 그러나… AM은, 간단히 말해, 그는 승리자다…그는 복수를 했다…
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 나는 입이 없다. 그러나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