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7월 11일,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킹 압둘아지즈 국제공항
찌는듯한 무더위속에서 DC-8항공기 1대가 활주로를 달려나가고 있었다.
이 항공기는 261명이 탑승한 나이지리아 항공 2120편(기종 DC-8-61)으로,킹 압둘아지즈 공항에서 출발해 소코토 아부바카 국제공항까지 가는 항공편이었다.
그런데,눈썰미가 좋은사람이라면 2120편의 사진을 보고 궁금해할수도 있다.
나이지리아항공이 운영하는 항공편인데 왜 사진속 2120편의 도장에는 내이션에어라는 도장이 되어있을까? 나이지리아항공의 원래이름이 내이션에어도 아닌데 말이다.
사실,2120편은 내이션에어가 얼마전 나이지리아항공에게 정비시스템,조종사들과 같이 리스해준 비행기였다. 이때 시간이 없었는지 나이지리아항공은 미처 내이션에어의 도장을 자기의 도장으로 교체하지 못했고,어쩔수없이 내이션에어의 도장이 벗겨지지 않은 항공기를 노선에 투입시킬수밖에 없었던것이다.
각설하고,2120편의 기장은 윌리엄 앨런,부기장은 켄트 다비제,항공기관사는 빅토르 페르였다.
이들은 모두 내이션에어와 나이지리아항공의 임대계약에 따라 내이션에어에서 파견된 조종사들이었고,모두 비행시간이 7천시간이 넘는 베테랑이었다. 2120편의 승객들은 대다수가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로 순례를 갔다가 나이지리아로 돌아오는 순례자들이었다.
오전 8시 28분,2120편은 압둘아지즈 공항의 활주로에서 이륙을 시작했다.
이륙도중에 타이어가 펑크나긴 했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고,2120편은 무사히 날아올랐다.
그런데, 이륙 1분쯤 후,기내압력이 갑자기 줄어들었다.
조금 뒤에는 비행에 필수적인 유압마저 줄어들기 시작했고,결국 회항을 선언하고 킹 압둘아지즈 국제공항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복귀도중에 2120편은 유압을 모두 상실했고,조종불능상태가 되었다.
이 상태에서도 조종사들의 노력으로 2120편은 활주로 2.8km앞까지는 오는데 성공했지만,
8시 38분,2120편은 우측으로 기운채로 지면에 충돌했다.
급히 구조대가 출동했으나,생존자는 없었다.
탑승객 261명 모두가 사망한 것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사고조사단을 수립해 즉각 조사에 나섰고,캐나다 교통 안전위원회가 도왔다.
항공기 블랙박스는 무사했고,블랙박스 기록들을 조사하는 동안 조사단은 사고기의 잔해와 시신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조사단은 2120편이 추락당시 화재상태였다는 것을 알아냈다.
사망자 시신들은 크게 그슬린 상태였고,심지어 회항도중에 기체에서 추락해 도심에 추락한 시신도 불탄 상태였다.
사고당시 근무중이던 관제사도 추락직전에 2120편이 화재가 일어났다고 하며 비상사태를 선언했다고 증언했고,사고 목격자들도 2120편이 당시에 불타고 있었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이 증거들을 바탕으로 화재로 인해 2120편이 조종기능을 상실한채 추락했다고 가설을 세웠고,왜 2120편이 화재가 발생했는지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조사단은 처음에는 2120편이 이륙한 활주로에 쇳조각이 놓여진걸 보고 쇳조각과의 충돌이 화재를 불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120편의 정비기록을 확인하던 조사단원이 어떤 사실을 발견했다.
사고당일,2120편의 8개의 타이어중(노즈기어 미포함) 2/4번 타이어의 공기압이 기준치보다 심하게 미달이었던 것이다.
규정상으로는 즉시 이륙을 취소하고 질소가스를 가져와 타이어의 공기압을 채워야 하지만,2120편은 그런조치 없이 이륙했던 것이다.
조사단은 즉각 사고당일에 2120편을 정비했던 내이션에어 정비사(계약에 따라 내이션에어가 항공기의 정비까지 담당함)를 불러 심문했고,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바로 내이션에어가 타이어 공기압이 미달한것을 알면서도 2120편을 강제로 이륙시켰던 것이다.
(심지어 그 이전에도 수차례 그랬음)
정비사는 사고직전에 내이션에어 직원에게 타이어 공기압이 미달하고 이륙취소후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고했는데 내이션에어의 직원이 그걸 잊어버리라고 말하며 질소가스를 공급하지 않고 이륙을 강행시켰다고 진술했다.
조사단은 곧바로 사고당시의 기온과 이륙직전 사고기의 동선을 조사했다.
그 결과,사고당시 메카의 기온은 40도였고 2120편은 이륙직전 5km정도를 이동했다는것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마침내 분석완료된 블랙박스기록에서도 음성기록을 통해 2120편이 이륙중 타이어 펑크가 발생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2120편은 이륙중 공기압 부족으로 일부 타이어에만 중량이 과중되며 타이어펑크가 발생했고,이때 매우 더운 메카의 기온이 더해져 원래보다 더 높아진 마찰열로 인해 화재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륙후 화재사실을 알지못한 조종사들이 불타는 랜딩기어를 수납해버리면서 화재가 연료탱크와 객실,유압시스템까지 옮겨붙었고 그 결과 2120편은 조종기능 다수를 상실한 채 추락해버리고말았던 것이다.
(다만 일부 조종기능은 추락직전까지 멀쩡했음)
조사단은 최종보고서에서 타이어 화재에 대한 경보장치가 없었던 2120편,정비불량및 내이션에어의 직무유기,내이션에어의 타이어 공기압수치 조작,조종사들이 타이어가 펑크가 났음에도 이륙을 감행한 것을 지적했다.
이 사고로 그전부터 악명이 높은 막장항공사던 내이션에어는 캐나다 최악의 항공사란 오명을 썼고,이때 수백만 달러의 착륙비를 연체한 것까지 발각되어 결국 1993년에 파산했다.
또,내이션에어의 소유주 로버트 오바디아는 이 사고와 내이션에어 경영중 친 수차례의 사기행각으로 재판을 받아 약 20만달러를 배상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징역을 선고받지 않았고,누구도 2120편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현재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에는 이사건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세워져있다.
2120편 사고 희생자 261명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