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개요
1998년 10월 27일 서울시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주부 A(당시 34세)가 성폭행을 당한 뒤 두 팔이 뒤로 묶인 채 목이 졸려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심지어 처음 시신을 발견한 사람은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A씨의 딸이었다.
2. 전개
범행시각은 1998년 10원 27일 오후 1시경으로 추정되었고,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같은 날 오후 3시경 서울시 중구 을지로에서 뺴앗은 카드로 10차례에 걸쳐 151만원을 인출하면서 CCTV에 얼굴을 남기고 사라졌다. 사망한 A는 범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2차례 통화한 기록이 있었는데, 범인이 전화를 건 곳은 공중전화였다.
피해자의 몸에서 확보한 DNA로 가려진 범인의 혈액형은 AB형이었으며 현금 인출기 CCTV에 찍힌 범인의 얼굴 사진을 토대로 1998년 12월 2일자 공개수배 사건 25시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했지만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고 도봉경찰서가 운영한 수사본부도 사건 2년 후인 2000년 말에 결국 없어지면서 사건이 미제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수사본부 막내이자 경장이었던 B 경위가 2016년 6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로 부임한 뒤 다시 한번 수사에 들어갔다. B 경위는 DNA와 혈액형, 사진이 있는데도 범인을 잡지 못한 것과 피해자의 사체를 처음 발견했던 피해자 딸의 눈물이 내내 마음에 걸려왔다고 하며, 범인의 사진을 지갑에 항상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0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면서 기존에 15년이었던 강간살인의 공소시효를 과학적 증거가 있으면 10년 더 연장할 수 있게 되었고, 범죄자 DNA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되어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진 게 큰 힘이 되었다.
여기서 2010년에 만든 법으로 어떻게 1998년의 범죄의 공소시효를 늘릴 수 있냐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공소시효는 형법의 영역이 아닌 형사소송법의 영역으로, 형벌 불소급의 원칙은 형사소송법에는 해당되지 않는 영역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 공소시효가 완료되서 끝난 사건의 공소시효를 살릴 수는 없지만(이를 진정소급입법 이라고 한다. 이건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허용되지 않는다.)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진행중인 사건의 공소시효를 늘리거나 없애는 것은 가능하다.(이를 부진정소급입법 이라고 한다. 이건 가능하다.)
비슷한 수법의 전과자 8,000여 명을 간추리고, 다시 AB 혈액형만 분류한 결과 125명이 남았다. 이들의 얼굴 사진을 현금인출기 CCTV에 찍힌 사진과 하나하나 대조했더니 그 안에 동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
그의 뒤를 쫓아 그가 베란다에서 피우고 버린 담배 꽁초를 수거한 다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분석을 요청한 결과 사건 당시 확보한 DNA와 일치했다.
2016년 11월 11일, 범죄 발생 18년 만에 C는 양주시 주거지 아파트 지하에서 긴급 체포됐다. “강간 살인 혐의로 체포한다.”는 형사들 통보에 “무슨 말이냐?”라고 되묻던 그는 경찰서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범행을 순순히 자백했다. 그는 1995년 군복무 시절에 특수강도로 징역을 살기도 했고, 범행 이후 2003년에는 청소년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징역,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적이 있었고, 검거 당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검거된 C(44)를 강간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21일 밝혔다.
이후 검찰은 C를 강간살인 혐의로 기소한다.
3. 재판
1심 서울북부지방법원, 2심 서울고등법원, 3심 대법원의 입장이 대동소이하므로 한번에 보기로 한다.
재판에서의 C의 주장은 이렇다.
– 사건 당일 정보지 ‘벼룩시장’에서 피해자의 아파트전세 매물 광고를 보고 찾아가 둘러보고 전세보증금 감액이 가능하냐고 문의했더니, 피해자가 “보증금도 없이 집을 보러 다니느냐.” 라고 말하자 자존심이 상한다는 이유로 밖에 나왔다. 그러나 화가 가라앉지 않아 다시 집을 보는 것처럼 들어가 피해자에게 “18, 왜 말을 그딴 식으로 해.” 라고 하며 주먹과 발로 피해자를 쓰러뜨리고 이후 강간할 마음이 생겨 강간한 것
– 죽일 생각은 없었고 반항을 억압하기 위해 넥타이와 가죽벨트로 손과 목을 묶은 것 뿐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것이라는 인식은 하지 못했다.
라며 살인의 고의를 부정, 강간살인이 아닌 강간치사를 노리는 모습을 보였다.
재판부의 판단은
– 살인의 고의는 반드시 살해의 목적이나 계획적인 살해의 의도가 있어야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타인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발생시킬 만한 가능성 또는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거나 예견하면 충분한 것.
(이게 형법에서 말하는 고의의 뜻이다. 결과의 발생을 인식하고 있다면 고의가 있다는 것)
그 인식이나 예견은 확정적인 것(확정적 고의. ex – 내가 이러면 얘가 죽겠지.) 은 물론 불확정적인 것(미필적 고의. ex – 내가 이러면 얘가 죽을지 말지는 잘 모르지만, 뭐 죽더라도 어쩔 수 없지.)이라도 이른바 미필적 고의로 인정되는 것.
그리고 그 인식의 여부는 피고인의 주장을 따르는 것이 아닌 판사가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판단하는 것.
– 피고인이 피해자의 목에 가죽 허리띠를 감아 뒤로 당길 때 이미 피해자는 엎드려 손발과 입을 결박당하여 반항이 어려운 상태였던 점, 그럼에도 굳이 가죽 허리띠와 허리끈을 함께 피해자의 목에 감아 상당한 시간 동안 강하게 잡아당겼던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하려는 그 이상의 의도를 가지고 위와 같은 행위에 나아간 것으로 보이는 점
– 부검의 소견에 의하면 피해자 목에 가해진 힘은 한 번에 가해진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가해진 것이고 피해자가 사망한 이후에도 가해진 것으로 판단되는 바, 이러한 경우 경부압박으로 인한 질식 가능성은 매우 높았고, 피고인 또한 그러한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며, 나아가 사망이라는 결과발생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도 있었다고 보아야 하는 점
– 반항을 억압하려고 한 것이라는데 피해자 몸에 남은 삭흔을 보면 목 뒤보다 목 앞에 삭흔이 더 강하게 남아있는데 이것은 피해자가 완전히 제압된 채 뒤에서 강하게 목을 조른 것으로 단순히 반항을 억압하려고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점
라며 피고인의 주장을 개소리 집어치우라며 배척,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여 강간살인의 유죄를 인정하였다.
양형에서는 당시 초등학교 5학년밖에 되지 않은 피해자의 딸이 피해자인 어머니가 손발이 결박당하고 목이 묶인 채 살해당한 것을 처음으로 발견, 씻을 수 없는 충격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오게 한 점, 범행이 발각되기까지 18년간 별다른 죄책감 없이 청소년의 성매매를 알선하는 등 또다른 범죄를 저지르며 일상을 영유, 유족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으며, 유족들이 피고인의 엄벌을 원하고 있다면서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하도록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
이후 판결이 2심 서울고등법원을 거쳐 3심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