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은과 금의 대결에서 살아남은
금에 대해 얘기해볼까합니다.
17세기말 영국은 은화가 통용되었는데,
이 당시 국제무역간 결제는 은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죠.
다른 나라와 교역할 때 화폐가 다르면 그냥 은화를 녹이면 됐었습니다.
그렇다면 은이 향하는 곳은 어디었을까요?
17~18세기 세계 무역의 중심은 중국이였습니다.
주요 수출품은 견직물과 도자기였는데
17세기 중엽 유럽에는 차가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17세기 후반부터 차가 본격적으로 수출되었고 19세기초에 이르러서는
차의 수출이 견직물을 뛰어넘을만큼 중국 차의 인기는 하늘을 찌릅니다.
그런데 이것이 영국에게는 골칫거리였습니다.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차를 수입하는데 반대로 중국으로 수출할 물건이 없었기 때문이죠.
중국의 초과수출은 날로 늘어가고 반대로 영국의 무역적자는 지속됩니다.
영국은 중국에게 그나마 자신있던 모직물을 수출하려하지만
온난다습한 기후를 가진 중국에서 팔릴리가 없죠. 게다가 당시 중국의 발전이 훨씬 앞서있었기에
에펠탑에서 1달러짜리 팔찌 파는 외국인 보듯 봤을 겁니다.
영국의 ‘차 사줄테니 모직물 사줘’ 라는 씨알도 안 먹힐 무역협상에
중국의 건륭황제는
‘모직물은 우리한테 필요 없으나 중국의 차와 자기, 견직물은 너희한테 필수품이니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 팔아주는 것이다.’
라고 편지를 보내며 영국에게 빅엿을 선사합니다.
영국은 자국의 은이 유출되고 있는데 다시 회수할 방법이 없는 것이죠.
하지만 1757년 동인도회사가 인도, 벵갈 지역의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자 상황이 변하게 됩니다.
영국이 동방무역 독점과 벵갈지역 통치권을 얻어내는데
공교롭게도 이곳의 특산물이
아편입니다.
조금 미래의 이야기이지만
이 식물 하나로 중국은 매우 큰 값을 치루었죠.
자, 다시 영국의 화폐 이야기로 돌아가서
무역적자를 통한 은화 유출은 통화가 아닌 은 자체의 가격 상승을 유발했습니다.
반면 영국의 은화 가치는 고정되어 있었고 은 가격의 상승은 복잡미묘한 문제를 일으키게됩니다.
바로 은화의 가치가 ‘저평가’ 되는 것이였습니다.
은값이 오르니 은화 주조비용이 올라 실질적으로 내재가치는 오르지만 은화값은 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금화는 ‘고평가’ 되어 있었습니다.
지난화의 이야기를 잠깐 되짚어 보자면 화폐의 마모 혹은 귀금속 함량 변화에 따라
사람들은 좋은 화폐는 숨겨두고 가치가 떨어지는 화폐만 사용하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은화 한닢 값의 고기를 사야하는데
은 함량이 30%인 은화와 90%인 은화 한 닢씩 갖고 있다면 어떤 은화를 사용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순도 30%의 은화를 사용하겠죠. 실질적 가치가 더 낮으니까요.
결국 시중에는 가치가 낮은 즉, 실질가치에 비해 ‘고평가’ 된 통화만이 유통됩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는 은이었기 때문에 해당 문제에 맞서
영국은 금화를 평가절하하여 은화의 상대적 저평가를 막으려 했지만
근본적인 은의 유출을 막지 못한 영국은 복본위제를 유지할 수 없었죠.
따라서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금태환을 중지하였던 영국은
1819년 금태환법을 제정하고 1821년 은행권의 금태환을 재개하며 금본위제를 확립하게 됩니다.
영국의 금본위제에 감초 역할을 한 것이 있는데
동전테두리 같은 위조방지기술이 발전하면서 나타난
‘은 토큰’ 입니다.
금화와 은행권은 더 큰 규모의 거래를 가능하게 해주며 인류 경제를 팽창시켰지만
뭐든지 익숙해지면 그제서야 단점이 보입니다.
작은 사탕 하나를 사려면 얼마나 작은 금화를 줘야할까요?
금화와 은행권은 작은 규모의 거래에는 부적합했습니다.
‘통화는 아니지만’ 금화를 대신해 소액거래에 사용할 동전이 필요한데, 이것이 토큰입니다.
은 토큰은 이전 은화와는 다르게 동전 속의 은함량,무게 등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그 액면가치만 따지는 것이죠.
은토큰이 금화를 보완하게 되면서
영국에서는 오로지 금과 금화 사이의 가치관계만이 중요해지게 된 것입니다.
이후 1871년 독일이 금본위제에 합류하면서 독일의 영향을 받던 북유럽 국가들도 금본위제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시중에 막대한 양의 은이 풀리게 되면서 은값이 급락을 피할 수 없게 되자
1878년 복본위제를 유지하던 프랑스마저 금본위제를 도입하고
1879년 미국이 마침표를 찍으며 금본위제는 국제 통화체제로 자리잡습니다.
다음에는 금본위제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달러의 패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