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6월 24일 오후 3~4시경,미국 뉴욕의 JFK 국제공항.
124명이 탄 보잉 727-225기 한대가 JFK공항에 접근하고 있었다.
접근중이었던 보잉 727기의 정체는 바로 이스턴항공 66편.
뉴올리언스에서 출발해 뉴욕 퀸즈까지 가는 항공편이었다.
이날,66편의 기장은 존 클레벤,부기장은 윌리엄 에버하르트였고,항공기관사는 게리 쥬렌과 피터 맥콜러였다.
66편은 평상시와 같은 비행후에 3시 반에 뉴욕시에 접근해 착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착륙을 준비하던 66편에게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뉴욕시에 뇌우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뇌우로 인해 뉴욕 상공의 가시거리는 거의 0이 되었고,강한 난기류들이 항공기를 흔들기 시작했다.
조종사들은 착륙을 포기하고 다른 공항으로 갈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종사들이 이야기하던 도중,오후 3시 52분과 53분에 관제탑은 66편에게 계기 비행규칙을 지키면서 계기비행을 통해 22L 활주로에 착륙하라 지시했다.
관제탑의 이 지시에 라과디아 공항같은 인근의 대체공항을 찾아보던 66편 조종사들은 결국 관제탑의 지시를 받아들여 22L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4시 5분,뇌우를 뜷고 66편은 활주로에 근접하는데 성공했고,곧 최종접근을 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무사히 착륙할 수 있을거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66편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조종사들은 급히 출력을 최대까지 올리고 상승하려 시도했지만,헛된 시도였다.
66편은 활주로에서 7~800m정도 떨어진 지점에 빠르게 추락했다.
추락직후 66편은 멈추지 못하고 여러번 회전하며 지면과 부딫힌 후 폭발했다.
급히 공항소방대가 출동했으나,생존자는 11명밖에 없었다.
66편 탑승자 124명중 113명이 사망했다.
이 비극적 참사에 NTSB는 즉시 조사단을 꾸려 사고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사단은 곧 66편사고 당시 뉴욕시에 뇌우가 몰아쳤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이 사고가 악천후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사단은 66편의 착륙 직전 착륙했던 조종사들에게 증언을 요구했고,뉴저지 주의 NWS 기상레이더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당시 사고를 다룬 신문기사
조사단들의 생각은 적중했다.
당시 66편 직전에 JFK공항에 착륙한 조종사들 모두가 악천후로 인한 추락위기를 겪은 것이었다.
특히 플라잉 타이거 161편의 조종사는 극심한 하강기류를 겪었다고 진술했다.
기상레이더의 기록을 찾아본 조사관들도,66편 추락시에 JFK공항 바로앞에 강한 하강기류와 뇌우가 형성되었던 것을 확인했다.
66편은 결국 악천후로 인한 하강기류로 인해 착륙직전 급강하해 추락한 것이었다.
1976년 3월 12일,조사단은 최종 보고서에서 66편이 뇌우의 하강기류로 인해 추락했다 결론지었고,악기상에 대한 조종사의 잘못된 대처도 지적했다.
66편의 불운한 추락은 당시의 항공업계에 이상기류와 악기상에 대한 관심과 경각심을 촉발시켰고,이후의 항공업계가 기상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우도록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테드 후지타라는 기상학자가 마이크로버스트라는 국지성 하강기류를 연구하게 되어서 후일 항공사고조사와 항공안전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66편 사고 희생자 113명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