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사회와 협력 경제를 위한 미래 시나리오를 읽었다. 리눅스 같은 오픈소스, 크리에이티브 커먼스(CC) 같은 공유 라이언스 등 공유지를 지향하는 성숙한 협력 경제 생산 모델을 제시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책에서 협력 경제는 자본주의 이후 시대를 이끌 패더라임으로 제시됐다.
저자들은 성장과 경쟁 중심의 자본주의는 한계에 달했고 리눅스나 CC에 녹아든 협력의 코드가 주도하는 경제로 판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협력 경제라고 해서 기업들의 영리 활동이 의미가 없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IBM이 리눅스 협력 생태계에 기여하면서 리눅스를 비즈니스에 활용한 것처럼 협력 경제와 비즈니스는 공존이 가능하다.
협력 주도 경제는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구조다. 사용자 참여를 기반으로 돌아가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협력 경제의 프레임으로 보면 다른 세계다.
저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웹2.0 서비스는 넷위계형 자본 주의 모델이다. 앞에서 보면 분산 경제처럼 보이지만 뒷단은 거대 공룡 기업이 모든 것을 들었다 놨다하는 독재 시스템이다.
앞은 물론이고 뒷단까지 탈중앙화한 비트코인은 어떨까? 콘셉트만 보면 비트코인은 리눅스나 CC와 한팀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저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비트코인은 공유지 기반 협력 경제 패러다임과는 DNA가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고 비트코인을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넷위계형 자본주의 그룹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저자들은 비트코인을 지배하는 원리를 분산형 자본주의로 규정했다. 협력 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비트코인은 리눅스나 CC보다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가깝다는 뉘앙스가 읽힌다.
비트코인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코드일 뿐이기 때문에 다른 통화들이 겪는 문제를 전혀 겪지 않는 무당파적인 통화처럼 보일때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비트코인에 새롭게 떠오르는 거버넌스 구조의 징후가 있다는 사실 외에도 비트코인의 전체 논리가 다른 통화들의 주요 규칙을 따르는 것 역시 볼 수 있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이 아닌 코드에 책임이 있지만 레식이 말했듯이 인터넷에서는 코드가 법이기 때문에 각각의 소프트웨어 조각은 정치성으로 문들어 있다.
실제 세계에서 법은 은행이 다양한 관계자들 간에 신용 거래를 중개할 수 있게 해준다. 법은 계약의 신뢰성을 보증하고 재산권을 보호하며 화폐의 유통을 조절한다. 레식에 따르면 디지털 세계에서는 코드가 이 역할을 맡아 사용자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규정한다. 그러므로 앞서 설명했듯이 비트코인은 여느 소프트웨어처럼 특정한 정치적 프레임에서 도출된 아이디어로 물들어 있다. 바꿔 말하면 이 프로젝트의 P2P적 측면은 컴퓨터와 코드에 있지 사람들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비트코인은 의도적 희소성을 갖는 통화다.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을 2400만개의 유닛으로 한정함으로써 비트코인이 유명해질수록 가격이 더욱 올라가는 조건을 만들었다. 당연히 이는 비트코인을 더욱 사용하기 어렵게 만든다. 구매자들은 가격 상승의 이점을 취하기 위해 거래를 피하는 반면 판매자, 예를 들어 장인은 지금 재료를 사면 최종 생산물이 준비되었을 때 가격이 내려서 불리해질 것이다.
요컨대 디플레이션 통화는 생산자/판매자가 가능한한 빨리 팔도록 압박을 가하는 한편 구매자들은 매입을 최대로 하기 위해 가격이 떨어질때까지 기다리기를 선호한다. 이런 상황은 명백히 위기로 이어진다. 추측컨대 비트코인 창작자는 신용 체계에 대해 다양한 정치경제적 비판이 이루어지는 풍토 속에서 부채 없는 통화를 만들려고 의도했을 것이다. 비트코인은 두 관계자 간의 신용 관계로서가 아니라 네트워크에서의 사적인 정보로 발생한다.
비트코인의 귀족정은 코드의 구조에서 기인한다. 이 귀족정의 구성원들은 새로운 유닛을 만들어내기 쉬웠던 초기부터 비트코인 게임에 뛰어든 이들이자, 이른바 괴물 기계라고 불리는 비트코인 채굴에 특화된 강력한 컴퓨터를 소유한 사람들이다. 사용자들중 소수가 대량의 비트코인을 축적했으므로, 비트코인은 넘어서야할 신용체계의 가시적 특성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프로젝트 전체의 생존력을 위협한다.
우리의 논지는 비트코인이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키는데 목적을 두는 공유지 지향 프로젝트가 아니라 분산형 자본주의를 개시하는 통화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버전의 자본주의는 네트워크 시대의 특성에 부합하며 자본 축적을 달성하기 위해 P2P 인프라를 이용한다. 비트코인은 다수의 사용자를 허용하도록 디자인되어 자율성을 제공하지만 경쟁적인 프레임이다. 이 프로젝트는 금융 시스템 바깥에 존재하지만 희소성과 경쟁을 유발함으로써 자본의 과잉축적을 심화시키고, 맞서 싸워야할 사회적 불평등을 악화시킬 것이다.
큰틀에서 암호화폐를 떠받치는 인프라인 블록체인은 경쟁보다는 협력과 코드가 맞는 패러다임이 될수도 있다 생각해왔는데 저자들이 비트코인 뿐만 아니라 블록체인까지 모두 경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보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공유경제 주창자인 로렌스 레식 하버드대 교수에 따르면 진정한 공유경제의 정의는 자신이 소유한 기술이나 자산을 다른 사람과 나눔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협력적 소비다. 블록체인과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블록체인 하면 분산과 신뢰는 떠오르는, 나눔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나눔이 신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인프라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공유 경제의 주창자인 레식 교수의 눈에 블록체인 기반 에어비앤비 같은 서비스는 제대로된 공유 경제로 비춰질까? 블록체인이든 아니든 플랫폼위에 올라가는 서비스를 경쟁의 코드가 지배하는한, 레식 교수가 그렇다고 대답할거 같지는 않은데… 로렌스 레식과 블록체인을 검색으로 구글링을 했는데, 명쾌한 답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