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그동한 노벨상을 25명이나 받았는데, 한국은 아직까지 한명도(노벨평화상 제외)도 없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김대식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와 그의 동생인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공부를 주제로 한국 사회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는 책 공부 논쟁을 보면 한국은 자기 집을 짓지 못하는 학문적 풍토가 없다는 점이 노벨상과 인연이 없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김대식 교수가 이같은 관점에서 흥미로운 주장들을 펼쳐 눈길을 끈다. 책을 보니 김 교수는미국식 사고가 주도하는 한국의 교수 사회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다. 한국 교수들 다수가 미국에서 나온 논리를 따를 뿐 자기 생각이 갖지 못하다보니 일본 만큼 노벨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이 봤을때 일본에서 만들어진 학자들은 뭔가 달라요. 내용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고 시스템도 달라요. 일본에서 새로 시작한 분야가 있고 일본에서 처음 발견한게 있어요. 15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해외에서 박사를 딴 두명은 일본 시스템에 반항하다가 미국에서 박사를 받은 경우에요.
우리나라처럼 국내에서 제일 잘해서 하버드대를 간 사람들이 아니고 일본에서교수랑 싸우고 교수에게 “너는 절대로 일본에 자리잡지 못한다”라는 소리를 듣고 미국으로 쫒겨간 사람들이에요. 일본은 유학을 보낸게 아니라 자기 나라 안에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낸 거죠. 인브리딩을 통해서 잘하는 놈이 살아남게 했어요.
야마나까 신야 교수도 오사카 시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딸때는 철저하게 일본식 인브리딩 시스템안에서 공부한 사람이에요. 우리나라였다면 야마나카 같은 사람이 교수가 되고 노벨상을 탈수 있었을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교수 임용 시스템 구조 탓도 크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일본은 자기 연구실 출신 박사중 제일 잘하는 사람을 교수로 뽑아요. 그후에 정교수가 되기위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죠. 일반적으로 일본 학문에서 이루어지는 인브리딩의 핵심은 교수 임용 시스템이에요. 일본은 독일의 교수 임용 시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일단 전임강사나 조교수가 되면 이변이 없는한 모두 정교수가 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과 독일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정교수가 돼요.”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 유학가서 거기 교수가 되고 잘나가는 건 개인적으로 좋은 일이지만 우리 학문의 성장과는 별 관련이 없어요. 물론 저도 그분들을 존경하고 좋아해요. 정말 아깝게 노벨상을 놓친 분도 있어요. 그런데 만약 그분이 노벨상을 받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미국에서 박사 받고 미국 인프라를 가지고 연구해서 노벨상을 받았는데,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한국인의 DNA를 가지고 있으니까 민족주의적인 의미는 있겠지만 학문적으로는 우리나라와 아무 관련이 없는 거에요.
노벨상 꿈나무니 뭐니 해서 대기업들이 학생들을 하버드대로 보낸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웃기는 거죠. 그 학생들이 노벨상을 받으면 그게 우리나라의 결과물인가요? 아니죠. 박사학위를 따는 순간에 새로운 과학자가 탄생하는 거에요.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미국 과학자지 한국 과학자가 아니에요. 그보다는 오히려 인도에서 유학온 학생이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한국 인프라도 노벨상을 받으면 그게 우리나라 과학자이고 한국의 노벨상인거죠. 혈통적으로 한국인이냐 아니냐에 초점을 맞출 이유가 없어요. 적어도 학문적으로는 인도 사람이 여기서 박사를 받으면 한국 시민인거고, 한국 사람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면 미국 시민인거에요.
IT판에선 일본은 자기 스타일을 고수해 세계의 흐름에서 멀어졌고 결국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일본식 갈라파고스식 접근으로는 해외 무대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대식 교수는 자기 스타일을 추구하는 일본식 접근에 긍정적이다. 적어도 학문적으로는 일본식 스타일이 의미가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일본에서 노벨상이 많이 나온 것은 인브리딩, 즉 동종 교배 덕분입니다. 학문의 세계에서 다른 종이 생기려면 다윈주의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섬에서 고립된 상태에서 인브리딩이 일어날 필요가 있어요. 남과 다른 독특한 애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일찍부터 일본 박사들을 중심으로 일본 인프라를 가지고 자기 집을 짓기 시작했어요. 학문적 종속이 없었어요. 학문적 고립속의 동종 교배가 갖는 힘을 보여준 거죠. 과학분야에서는 제대로된 동종교배, 인브리딩이 필요해요. 서울대 학부 출신들끼리 똘똘 뭉친 엉터리 동종교배 말고 학문적으로 연결된 동종 교배를 얘기하는거에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일찍부터 자기 집을 짓기 시작한 일본 과학자들의 방식이 옳았다고 봐요.
왜 일본에 노벨상이 많고 우리는 없냐?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 교수는 선비에요. 선비들은 공부를 통해서 더 높은 관직에 올라가려고 해요. 공부에 뜻을 둔 학자들도 나이가 들면 관직을 탐해요. 이런저런 정부 위원회의 위원장, 대학총장, 국회의원, 교육부장관, 총리를 꿈꾸죠.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에요. 웬 교육 출신 장관, 정치인이 그렇게 많아요. 교수가 훨씬 더 좋은 직업인데, 왜 장관을 꿈꾸는지,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이해를 못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게 전통이에요. 선비 문화가 그런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