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무기수출을 원천 금지했던 무기수출 3원칙은 제정된 이래로 일본 방위산업의 수출을 가로막는 존재로 손꼽혀왔었음. 하지만 탈냉전, 다극화 시대를 맞이하며 이 무기 수출원칙을 풀라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졌고, 이에 발맞추어 일본에 한 인물이 등장하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문제인 한 사람이.
아베 신조에 대한 평가는 뒤로 하고, 아무튼 강한 방위력과 경제를 가지는걸 원했던 양반이 이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카드인 무기 수출이라는 카드를 건드리지 않을 이유가 있겠음? 당연히 그렇지 않았고, 그렇게 2014년. 일본은 무기수출 3원칙을 대체하는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을 수립했음. 이런저런 내용이 들어있지만 결국 핵심은 일본의 무기수출이 허용됐다는거지. 그렇다면 일본 방위산업의 꿈은 이뤄졌을까? 답은 우리 모두 알고 있어.
무기 수출 3원칙만 없으면 순식간에 주요 무기 수출국으로 떠오를거라는 일본 방산업계의 기대와는 다르게, 일본 무기는 방산업계에서 철저하게 배제당했음. 그리고 그런 일본에게 구세주로 떠오른게 있었으니…
바로 호주 해군이었음. 콜린스급 잠수함의 성능에 신물이 난 호주 해군이 콜린스급 6척을 대체하기 위해 무려 12척의 재래식 잠수함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한거지.
(호주 해군의 말썽꾸러기, 콜린스급…)
성사만 된다면 21세기 사상 유례없을 규모의 방산 수출 실적으로 기록될 초대형 사업이 시작된거지. 그런데 심지어 호주의 분위기는 방산수출 초보 일본에게 더없이 우호적인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음.
우선 당시는 미일관계가 최정점을 달리던 오바마-아베 시기였고, 미국은 일본에 발맞추어 일본의 소류급을 도입하라는 압력을 호주에 행사했음. 그리고 이에 호주 정치권도 발 맞추어 화답했고.
자국의 잠수함 조선소 ASC를 믿지 못한 호주는 잠수함을 호주에서 만들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된 총리조차 공약을 뒤집어 엎어버렸을 정도로 소류급에 우호적이었음. 심지어는 당시 소류급을 라이센스 생산할 것이냐 직수입할 것이냐를 놓고 호주 국방장관이 “카누도 제대로 못 만들 회사가 무슨 잠수함을 만든다고“라고 강경 발언을 하며 직도입을 밀 정도였으니 얼마나 소류급에게 판이 깔렸는지는 설명이 더 필요없겠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터졌음.
호주가 잠수함 생산을 위해 설립한 회사인 ASC(호주A 잠수함S 회사C…)에서 대거 반발에 나서고, 거기에 ASC의 조선소가 위치한 지역정부, 야당이 총동원해 공세에 나선거지. 이들은 입을 모아 외쳤음.
“12척이나 도입하는 초대형 사업에 무슨 경쟁 없이 직수입이냐? 당장 경쟁입찰 현지생산으로 전환해라!”
사실 잠수함 수출의 선두주자였던 독일조차도 고작(???) 9척을 구매하는 한국에게 현지 생산을 허용한 판에 직도입을 고집하는 건 사실 말도 안되는 요구였던게 맞음. 괜히 뒷배만 믿고 고집하다가 똥볼찬거고, 결국 호주는 결국 이들의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사업을 라이센스 생산을 목적으로 한 경쟁 입찰로 전환했지.
하지만 일본은 그럼에도 이렇게 생각했음.
“어차피 이 판은 우리가 이미 먹은 판이다.”
호주 해군이 어택급 잠수함으로 프랑스의 바라쿠다급 재래식 추진형을 선택한 날, 일본 방산업계의 단 꿈은 그렇게 산산히 조각났지.
이 사업의 결과에 대해 여러가지 말이 돌지만, 결국 결론은 2가지임.
1. 소류급이 바라쿠다급에 비해 호주의 작전환경에 잘 맞지 않았다.
2. 그 차이를 메꾸고 뒤집어야 했을 일본의 세일즈가 오히려 차이를 벌릴 정도로 처참했다.
무엇이 문제였나 한번 알아볼까?
1. 소류급의 문제
돌이켜보면 호주 잠수함 사업의 핵심은 단 한가지였음. 장거리 고속 전개 및 초계 능력.
호주는 철저하게 미국의 해양전략에 편승하는 국가고, 따라서 호주 해군은 평시에도 드넓은 해역을 초계해야 하는데 유사시에는 남중국해까지 전개해야 할 처지였지. 따라서 잠수함의 형상 및 설계는 장거리 고속 전개에 최적화되어야 했음.
그러나 일본의 전략적 환경은 그와 완전히 달랐음. 예로부터 해자대의 지상과제는 쏘야해협/쓰가루해협/대한해협을 돌파하는 소련 잠수함대를 저지하는 것이었고, 탈냉전 이후에 중국이 부상한 이후에도, 중국 잠수함대의 오키나와-센카쿠-대만 돌파를 저지해야 했으니까.
따라서 일본의 잠수함의 주 전술은 해협에 매복해 돌파하는 적 잠수함을 요격하는 전술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소류급도 거기에 중점을 두고 설계됐지. 일례로 말해주자면, 소류급에는 일반적인 잠수함이라면 보통 장착되는 능동소나가 탑재되어 있지 않음.
오죽하면 잠수함 충돌 사고가 난 직후에서야 능동소나를 다는 걸 검토하겠다고 기사까지 났을까? 참고로 저거 무려 1년 전 기사임. 거기에 형상까지 당연히 고속항해와는 거리가 먼 형상이었고, 승무원 거주성은 복각 선체를 채용한 덕분에 최악이었지.
반대로 바라쿠다급은? 배수량도 큼직하고, 애초에 원본부터가 원잠이었던만큼 고속전개에는 특화되다 못해 전문이라고까지 불러야할 정도였지.
외교적 상황를 보며 유리하다고 생각한 일본이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요구조건에서 한참을 지고 시작했다는걸 잊은거지.
사실 그리고 외교에서도 그렇게 유리하지는 않았음. 왜냐면 미국이 호주의 반응과 독일, 프랑스의 참여를 보고 방향을 바꿨거든. 호주가 잠수함으로 뭘 도입하든 신경쓰지 않겠다고.
2. 처참한 세일즈
이코노믹 애니멀이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일본의 세일즈 전략도 방산 수출이 처음인걸 반영하듯 처참했음.
우선 현지 생산 문제에서도 문제가 컸음. 애초에 일본은 처음 수출에 나서는 거였고, 따라서 현지 파트너가 부족했거든. 그래서 현지 부품 공급업체와 연결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했지. 거기에 또 기술이전까지 미적거렸고.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일본 내에서 대형 망언까지 터지게 됨.
일본의 전 잠수함장 중 한 명이 “호주? 기술력도 별로고 정보보호도 못하는데 기술이전 해야하냐?”라는 식의 발언을 해버린거임. 덕분에 호주 내에 그나마 남아있던 우호적인 여론마저 등을 돌리게 됐지. 진짜 총체적 난국이었음.
그 이후 일본 방산업계에 닥쳐 온 여파는 심각했음. 그 이후 일본은 방산 수출에 있어서 고전을 이어갔고, 별다른 실적조차 내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프랑스가 수주한 수십조원짜리 사업을 영국과 미국이 외교안보적 우위를 기반으로 깔아뭉개고 뺏은 덕분에 생긴 10년~20년 가량의 공백마저도 다시 뺏어가긴 커녕 가성비를 무기로 한 한국에게 털릴 위기라는 걸 생각하면, 호주 잠수함 사업만큼 일본 방산 수출의 현실수출을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없는 거 같음.
위에서 성능과 외교차이로 치이고 동급에서는 세일즈 능력과 성능 최적화로 치이고 아래에서는 가성비로 치인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