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미제사건 File] 25.평택 도일동 송혜희양 실종사건 (1999)
<취급주의>
이 사건은 1999년 2월 13일에 발생한 사건으로, 공소시효가 만료되기까지 1년도 채 남지않은 장기미제 사건이다. 사건에 대한 단서나, 정보를 알고있는 경우 반드시 가까운 부서나 담당 경찰서에 연락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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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쉽게, 빨리 잊혀질 수 있는가?
요컨대, 이 질문은 모든 사람들에게 제각각 다른 의미로서, 또한 다른 해답으로서 다가올 것이다.
ㅡ실종사건과 납치사건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람이 종적을 잃고 신원 상태나 생사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이를 실종失踪이라 일컫고,
‘신원확인이 불명확한 사람을 누군가 강제로 납거한 사실이 분명할 때’, 이를 납치拉致라고 일컬으며
이와 동시에 살해나 공갈협박이 동반될 경우에 ‘납치살해’, ‘납치공갈’ 등으로 파생된다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실종의 범위안에 납치가 존재하며, 납치는 실종이지만 실종은 납치라고 할 수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개념적으로 명확히 구분되는 이 두가지, 실종과 납치가 ‘구분된다’는 사실이 하여금
수사의 방향을 흐트러트리고 비로소 맹점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실로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이순간에도 피해자가 사라져 그 존재를 감춘 현장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묻는다.
“이 실종사건이 곧 ‘납치사건’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다시한번 질문한다.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쉽게, 빠르게 잊혀질 수 있는가?
단언컨대, 사람의 존재는 잊혀지지 않고, 잊혀져서는 안된다.
이미 망자가되어 구천을 떠돌고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울리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하는 바가 아닌가..
혹자는 말한다.
‘ 실종失踪은 기억에 대한 존속살인이다 ‘
<송혜희 양>
1999년 2월 13일. 평택 도일동 하리부락.
송길용씨는 도일동에서 아내와 두명의 딸과 함께 살고있던 평범한 자영업자였다.
특히 둘째딸 송혜희 양 (당시 18세, 고등학교 2학년)은 고등학교에서 전교 1~2등을 다툴정도로 영특한 아이였고, 때문에 국회의원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기도 했던 아버지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2월 13일은 송혜희 양의 고등학교 3학년 반 편성이 있는 날이었고, 때문에 오전에 학교에 갔다가 하교후 오후 5시 30분 경, 남자친구의 집이 있는 송탄 서정리에 가기위해 집을 나섰다.
<송혜희양이 살던 경기도 평택 도일동 하리부락>
정신없이 놀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고, 때문에 오후 10시경, 집으로 가는 막차에 올랐고 친구들이 이를 배웅해주며 차가 떠났다.
친구들과 헤어진 경기도 송탄 서정리와 송 양의 자택이 있는 경기도 평택 도일동까지는 약 5km 떨어져있었으나 버스를 타고 갈경우 10~20분 거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송 양이 거주하는 동네가 본래 사람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아니었던 탓에, 송 양이 내릴 즈음에 버스 막차안에는 송 양과 30대로 보이는 성인 남성 , 둘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10시 15분 경.
이윽고 버스는 송 양이 내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송 양은 ‘도일 주유소 앞 정류장’ 에서 내렸는데, 이 정류장과 실제 도일동과의 거리는 1km로 도보로는 15~20분 가량이 소요되는 거리었다. 무엇보다도 가는 길에는 논밭과 야산밖에 없어 불빛조차 찾기 힘들었으며 밤이 늦은탓에 인적도 없고 차도 버스를 제외하고는 다니지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차 안에 함께 타고있던 30대로 보이는 성인 남성 이 송 양과 함께 내렸다는 것이었다.
버스기사의 눈에 비치는, 송 양과 30대 남성 이 조금 떨어져 어둠속으로 함께 걸어가는 모습 그것이 육안으로 확인된 송혜희 양의 마지막 뒷모습이었다.
<당시 송혜희 양이 내린 정류장. (네이버 거리뷰) >
송 양의 아버지인 송길용씨는 송 양이 밤 11시가 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고, 연락조차 없자
딸의 친구들에게 전화해 송 양이 어디있는지 물었으나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갔다’는 전언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딸은 밤이 새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마침내 이튿날 2월 14일 오전 6시.
송 양은 실종신고 처리되었다.
송 양의 아버지 송씨와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은 곧 실종수사에 착수했지만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
그나마 송 양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버스기사의 증언이 전부였는데, 송양과 함께 내린 30대 성인 남성 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을 뿐이었다.
– 30대 남성이었다
– 오리털 파카에 모자를 푹 눌러쓴 남성이었다.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다
– 등산화를 신고있었다
– 평택 시내에서 버스를 탔다
– 이 동네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에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더니 ‘도일동 하리부락’ 이라고 대답했다
– 술냄새가 났다
– 버스에서 내린후 도로를 건너지않고 지하도로 향했다 (도로로 가든 지하도로 가든 하리부락 방향이다)
경찰과 송 씨는 이 30대 성인 남성 이 송 양의 최종 목격자, 내지는 납치범 일 수 있다고 판단, 이 남자의 행적을 쫒기 시작했으나 평택 시내에서 버스를 탔다는 것과 간단한 인상착의 외에는 어떠한 정보도 없었기 때문에 30대 성인 남성의 행방은 묘연할 따름이었다.
경찰은 때마침 사건발생일이 설날 3일전이었다는 사실에서 착안해 설을 보내기위해 귀성한 전입자일 수 있다는 것에 가능성을 두고 도일동 일대, 평택 일대를 샅샅이 조사했으나 별다른 단서를 찾을 수는 없었다. 계속되는 수사에도 눈에띄는 진전이 없자 경찰은 수사를 잠정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딸의 행방을 14년이지난 지금까지도 애타게 찾고있는 송길용(61)씨>
그러나 송 양의 부친인 송길용 씨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전단지와 현수막을 거는등 혼자서 개인 조사를 계속 실시했다. 생계업을 그만두고 많은양의 전단지와 현수막을 배부하느라 상당한 금액의 빚이 쌓였고 그 와중에 송길용 씨의 아내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했으며 현재 송길용씨는 혼자 제보전화를 기다리며 여전히 전단지를 배부하고있다. 이러한 부친의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3년 현재, 송 양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한 상태 이며
ㅡ2014년 2월 공소시효가 만료될 예정이다.
제보전화
경기 평택 경찰서 031 – 651 – 5604
평택 송혜희 양 실종자 가족 후원계좌
농협 205030-56-194211 송길용
참고링크 :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173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