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주의>
지난번에 언급했다시피 우리 대한민국이 대대적으로 과학수사와 프로파일링을 이용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고, 때문에 고전적인 수사방법이 지배하던
1990년대 초에는 건국이래 최대규모의 사건이 다수 발생했어..
특히 1991년은 3대 영구 미제사건 모두와 관련이 되어있는
한국 범죄사 최악의 해로 기록되고 있지.
이번에 소개할 화성 연쇄 살인사건 또한
1986년부터 시작하여 1991년을 마지막으로 한 대표적인 연쇄 살인사건이야.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서 유명해졌고 특히 그 잔인하고 용의주도한 수법에 의해
더욱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지..
<대략적인 사건의 경위>
맨 처음 연쇄 살인의 시작은 수원에서 나물을 팔고 잠깐 딸의 집에서 머무르고
귀가하던 중 목초지에서 한 할머니가 살해당하면서 시작되었어.
1986년 9월 19일 이모씨(당시 71세)는 목에 졸려 살해당한채로 발견되었는데
하의가 벗겨져있었지만 강간의 흔적은 없었어.
실종 5일차였지만 별다른 단서를 남기지 않은 탓에 수사는 흐지부지하게 되었지.
첫번째 사건이 일어난지 한달 남짓이 지난 1986년 10월 23일 오후 2시 50분
박모씨 (당시 25세)가 한 농수로에서 스타킹에 목이 졸린채 사체로 발견되었어.
발견당시 알몸상태였고, 강간흔적이 있었으며 하체에는 심한 상처가 남아있었는데
사체의 모습이 너무 끔찍했던 탓에 적지않은 충격을 주었지..
그리고 1986년 12월 21일 낮 12시 30분
약혼자를 만나고 귀가하던 이모씨(당시 23세)가 관항천 부근에서
스타킹으로 목이 졸린채 사체로 발견돼.
이번에도 강간흔적이 있었는데.. 끔찍하게도 범인은 강간후 피해자의 음부를
날카로운 우산 기둥으로 마구 난자한뒤에 짚더미로 덮어두었어.
이모씨의 약혼자는 사건 이후에 영혼결혼식을 올렸어.
저승에서라도 행복하기를 바라며..
3번째 사체가 발견된지 한달이 채 지나지않은 1987년 1월 11일 오전 10시 30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홍모양(당시 18세)는 집으로 돌아가던중 범인에게 잡혀
황구천 둑 한켠에서 목도리에 목이졸린 채 사체로 발견되었어.
양손은 스타킹과 브래지어를 이용해 등뒤로 묶여있었고 입에는 재갈..
강간흔적이 있었는데 피해자의 음부에서 B형 혈액이 검출된 것 외에는
다른 단서를 찾을 수 없었어. 사건 발생 후 12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경찰은 이 사건부터 범인을 지능범으로 판단하고 심층적인 수사에 들어갔어.
<화성 연쇄살인사건 조사현장>
홍모양의 사체가 발견된지 3달쯤 지난 1987년 4월 23일 오후 2시.
권모씨 (당시 25세)의 사체가 안녕리 근처의 공장 옆에서 발견되었어.
양손이 묶인채 하체가 벗겨져 있었고..
사건이 발생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탓에 시체는 썩고있던 중이었고
때문에 현장에 떨어진 도장과 피해자의 옷으로 간신히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해.
<화성 연쇄살인사건 발생현장 메모의 일부>
또 얼마 지나지않은 1987년 5월 9일 오후 3시.
박모씨 (당시 29세)가 진안리의 한 야산에서 하교하던 초등학생들에 의해 사체로 발견돼..
브래지어와 블라우스 등으로 세차례 목이 졸리고, 목과 어깨 부근에는
돌로 찍힌듯한 자상이 곳곳에 남아 있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팬티와 청바지가 온전히 입혀진채로 강간은 당하지 않았어.
단지 여성의 살해가 목적이었다는 것이지..
‘화성 연쇄 살인사건’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본격적으로 매스컴에 오르내리게 돼.
그때문인지, 7번째 사건은 1년이 넘는 텀을 두고 이루어졌어.
<사건의 발생 분포도. 고속국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6차 사건 이후 1년하고 4달 가까이가 지나 언론의 관심 밖으로 나가던 사건은
또다시 현재진행형으로 향하게 돼. 1988년 9월 8일 오전 9시.
안모씨 (당시 54세)가 가재리 농수로 부근에서 블라우스로 목이 졸려 숨진채로 발견되는데..
양손은 뒤로 묶여있었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으며 강간 흔적이 있었기 때문에
곧 경찰은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동일범의 소행임을 알아차렸지.
특히 먹다남은 복숭아가 피해자의 음부 안에서 나와서 충격을 주었어.
이런 끔찍한 상황 중에서도 고무적인게 있었다면
‘처음으로 범인이 목격되어 몽타주를 작성할 수 있었다는 것’
<범인의 몽타주>
당시 수원에서 화성으로 가던 버스 막차를 어느 한남자가 멈춰 세웠는데
범죄 시각과 위치가 일치해 이때가 유일하게 범인으로 의심되는 남자가 목격된 시점이었어.
버스 기사의 목격담에 의지해 작성된 몽타주는 형사들에게 ‘갑동이’로 불리곤 했지.
그러나 결국 범인은 잡지 못했어. 그런데 때아닌 날벼락으로
이 와중에 화성시의 남자들이 피해를 봤어. 툭하면 조사를 가장한 고문을 받아야 했거든.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고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7차 사건이 발생된지 일주일밖에 지나지않은 1988년 9월 16일.
오전 6시 30분에 중학생 박모양(당시 14세)이 자택 방안에서 자던중에 목이 졸려 숨진채로 발견되었지.
이번에도 강간흔적이 있었는데.. 피해자의 국부에서 범인의 체모가 극적으로 검출되었지.
검사결과 범인이 B형이라는 것과 티타늄 원소가 함께 확인되었는데
티타늄 원소가 용접공이 사용하는 용접봉에 함유되어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일대의 용접공을 몽땅 몽땅 수사한결과 마침내 농기계수리공 한명을 범인으로 검거하는데 성공했어..
그런데 그 범인은 그저 화성 연쇄살인의 모방범죄자였어.
결과적으로 화성 연쇄살인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별개의 사건이었던 거지.
잠깐이나마 활력을 띄던 수사는 또다시 미궁에 빠지게돼.
그리고 또 2년 남짓이 지난 1990년 11월 16일. 오전 9시 50분.
중학생 김모양 (당시 14세)이 병점리의 한 석재공장 뒤 야산에서 목이졸려 숨진채 발견돼..
전날 하교후 귀가하던중 성폭행 당한후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었고
국부 내에 있던 정액을 검사한결과 또다시 B형으로 확인되었지.
그러나 이번 9차 사건에는 ‘범인을 아는 제보자’가 존재했어.
피해자 김모양의 삼촌인 김명기씨 앞으로, 사건 개요가 상세히 적힌 3장의 편지가 도착한거야.
편지에는 부산우체국의 소인이 찍혀있었지.
편지의 주요내용을 정리하자면
‘첫번째. 범인은 피해자 김모양의 동네와 가까운 공장사람이며,
두번째, 나이는 10대 혹은 30대이고,
세번째, 사정상 이름을 밝히지 못하며, 수사에 참고하길 바란다’ 는 내용이었어.
인천에 거주하는 김명기씨는 부산에 친인척은 커녕 지인도 없고
편지의 필적 또한 생소하다고 증언했지.
곧 경찰은 편지를 쓴 사람이 김명기씨의 주소를 정확히 알고
범행장소를 잘 알고 있으며 범인에 대한 정보를 알고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편지를 보낸 사람이 범인 혹은 범인을 알고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수사에 착수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는 못했어.
참고로 이 9차사건이 바로 ‘살인의 추억’의 소재가 된 사건이야..
<3D 그래픽을 이용해 구성해 현재 모습을 추정한 모습. 발견즉시 신고하도록 하자>
그리고 다섯달이 지난 1991년 4월 4일 오전 8시 30분.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희생자 권모씨(당시 69세)가 반송리의 한 야산에서
하늘색 한복치마가 벗겨져 강간당하고 스카프로 목이 감긴채 시체로 발견돼.
그러나 남아있던 정액과 체모 조사결과 9차 사건의 범인과
DNA가 일치하지 않아 이 10차사건 또한 모방범죄였다는 것이 드러나지..
결국 1991년 10차 사건을 끝으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종막을 고하게 돼.
기어코 범인은 검거하지 못한채로-
<기타 의혹들>
첫번째, 목격자와 몽타주가 있었는데도 검거하지 못했고 또 다시 범죄가 발생했다.
– 목격자가 전혀 없었던 타 사건과 달리 7차사건에서는 버스 운전사와 안내원이 처음으로 범인을 목격하게 되는데,
“사건 당일 오후 10시쯤 발안 터미널을 출발해 수원 방면으로 10분쯤 가다보니 24~27세 가량의 남자가 정류장도 아닌 곳에서
손을 흔들어 버스를 잡아탔다” 고 증언하지. 이 남자가 버스를 세운곳은 피해자가 발견된 지점에서 400m 떨어진 지점으로
버스기사 강씨는 “남자는 무릎까지 물에 젖어있었고, 운전석 맞은편 앞자리에 앉아 나에게 라이터를 빌려 담배를 피웠다.”고 말했어.
그를 통해 몽타주를 작성해 현상금 500만원에 수배했지만 또다시 같은 지역에서 연쇄살인이 발생했지.. 당연히 범인도 수배지를 봤을텐데도.
두번째, 살해당한 여성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 가장 처음 살해당했던 이모씨는 일흔을 넘긴 할머니였고, 14살의 중학생까지도 건드리는 등
범죄 대상의 연령 스펙트럼이 지나치게 넓었다는점. 단순히 성폭행을 목적으로 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으며
강간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세번째, 생각보다 범인은 단서를 많이 남겼다.
– 범인은 강간후에도 음모 한가닥 조차 남기지 않는 치밀한 지능범으로 포장되곤 했으나, 진실은
범인이 경우는 달랐으나 많은 단서를 남겼다는 것이지. 발견된 단서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2차 현장 – 정액, 담배꽁초, 6가닥의 머리카락
3차 현장 – 머리카락, 정액
4차 현장 – 발자국, 정액이 묻은 손수건
5차 현장 – 정액
6차 현장 – 정액이 묻은 잠바
7차 현장 – 음모와 정액
9차 현장 – 머리카락과 정액
10차 현장 – 정액
그러나.. 당시 과학수사의 수준으로는 겨우 혈액형을 알아내는 것이 전부였고,
시대가 시대인 탓에 우수한 경찰력은 거의 민주화 시민(이라 쓰고 폭도라 읽는다)을 방법하는데 쓰였기 때문에
온전한 수사력을 발휘하기 어려웠으며, 수사 초기에는 심지어 간첩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공안경찰 ‘이근안’을 파견하기도 했어.
네번째, 화성 괴담
-사건 용의자들과 수사 담당자 상당수가 이상하게 죽어가자 이른바 ‘화성 괴담’이라는 말도 생겨났는데 다음이 그 목록이다.
4,5차 사건 용의자 김모씨 –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
7차 사건 용의자 박모씨 – 아버지 무덤 근처에서 목을 매달고 자살
9차 사건 용의자 차모씨 (38세) –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
9차 사건 용의자 김모씨 (19세) – 20세 중반에 암으로 요절
10차 사건 용의자 장모씨 (32세) – 투신자살
8차 사건 범인 검거후 특진한 최순경 – 교통사고로 사망
화성 수사본부 관계자 다수 사망
역시 이런 살벌한 살인사건 관련해서 글쓰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섬뜩해진다.
한 스무번은 뒤돌아 보면서 글쓴것 같네..
정말이지 늦게라도 범인을 잡아서 공소시효가 지났더라도 강력한 처벌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다음은 영구 미제사건중 세번째. 영화 [그놈목소리]로 유명한 이형호군 유괴사건 (1991)에 대해 적어볼게.
[출처] [대한민국 3대 영구미제사건] 2. 화성 연쇄 살인사건 (1986~1991)
2019년 화성연쇄살인범 이춘재 검거
경찰은 그동안 9차례에 걸쳐 대면 조사를 실시했는데, 이춘재가 자신의 범행을 자백
당시 화성에 살았던 것으로도 확인
진범이 잡히기 전까지 무고하게 죽어간 희생자들도 많은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