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전공자 입장에서 본 관점임 최대한 쉽게 풀어서 말할 거지만 내용 특성 상 짧게 세줄 요약은 힘듦
그래도 페미니즘이 무슨 대단한 사상인 것 마냥 지랄하다 팩트에 처맞고 나서는 ‘공부하세요’ 이지랄하며 말돌리는 병신들 상대할 때 알아두면 유용한 내용이니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일단 와드 박아놓고 개추 좀 해줘라. (내가 포인트 안 벌어도 좋다. 내용이 널리 퍼지는게 목적이니 자신있으면 이쁘게 편집해서 재배포좀 해줘라)
인트로)
대한민국 내 소위 ‘MZ세대’라고 부르는 10대에서 30대 사이의 집단에게 있어 가장 큰 갈등이라 하면 지역갈등도, 정치적 갈등도 아닌 남녀 갈등일 것이다. 어쩌고 언론사에서 조사한 남녀갈등의 가장 큰 이유는 대충 페미니즘 저쩌고이다 남자는 페미가 싫고, 여자는 반 페미가 싫다며 서로 물고 뜯는게 2022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근데 인문학 전공자로서 10년도 전에 해당 이슈들을 공부했던 나로서는 이해가 도통 안가는 부분이 있다. 애당초 한 나라의 여론이 이처럼 좌지우지 될 정도로 페미니즘이라는게 학문으로서 가치 있는 이론인가?
..라는 부분.
분명 10년 전쯤인가 나도 사회철학이니 뭐니 열심히 공부하던 적이 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페미니즘은 애초부터 전공자들 사이에선 유사학문 취급이나 받던 병신 욕받이에 불과했으니까.
전제)
철학이라는 학문의 개요 <- 이 부분은 굳이 몰라도 됨 철학(Philosophy). 혹은 사상(思想)이라고 불리는 이 학문은 <세상을 특정한 관점에서 해석하고(인식론, 형이상학)>, <그를 통해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규범(윤리학)에 대해 정의하는> 학문이다.
최초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는 ‘물’이라고 하는 것이 고체, 액체, 기체의 여러 상태를 거쳐가며 형태가 달라지는 현상을 통해 세상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어떤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
고대 지중해 사람들의 세계관에서 세상은 크로노스의 아들인 제우스 어쩌고가 헬라 저쩌고 하는 여신과 만나 뭐시기 하는 자식놈들을 낳고…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 역시 여차저차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산물이었다
그러니 “홍수가 나건, 벼락이 치건 굳이 ‘신의 분노’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신이(정확히는 신관이) 시키는 대로 살아라”라는 것은 그 동네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상식’이자 ‘도덕규범’이었다. 하지만, 저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신의 분노’가 아닌, 단순히 ‘물’이라는 물체가 가진 성질에 의한 물리작용이라면?
홍수가 나서 집이 떠내려가더라도 신의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제물을 바칠 필요 따윈 없고 오히려 수로나 댐 같은 관계시설을 정비해서 물을 다스리는 것이 ‘정답’이 된다.
이처럼 ‘세계에 대한 해석(형이상학)’은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행동(윤리, 도덕)’을 정의한다. 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고대 탈레스 시절의 이야기를 하였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서구권에서는 그러한 해석들(=세계관, =형이상학)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발전해가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서론) 페미니즘의 등장 배경 (읽어봄직 정도)
자, 철학이라는 것은 그러한 학문이다. 세계의 근간 또는 원리를 해석해서, ‘세계는 OOO한 거니까, 너는 XXX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것을 설명해주는 학문.
과거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정의하였지만 그러한 주장은 채 몇 년이 되지도 않아 수 많은 철학자들에게
‘쌉소리 ㄴㄴ’
‘만물의 근원은 불임(헤라클레이토스)’
‘ㄴㄴ 숫자임(피타고라스)’
‘ㄴㄴ 하나님 말씀임(기독교)’
..와 같은 식으로 반박당했다.
세상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주관식’이었고, 결국 철학이라는 학문은 그 자체로서 수천 년간 이어져 온 키보드 배틀의 장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상이 나오기 전, 누가 어떤 말을 하고 있었느냐’ ‘이 사상 이전에 어떤 사상적 전제가 깔려 있었느냐’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한다.‘ <- 존나 중요 (그러니까 싯팔.. 철학 공부하려면 철학사 흐름 한번 정도는 훓고 가라는 게 이런 뜻이다. 헤겔이고 맑스고 그거 하나만 전공하고 싶더라도, 그거 하나만 읽는 새끼들은 결국 노답이 될 수밖에 없다.)
자, 그러면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이 이론은 어떤 시대상과 떡밥 위에서 태어난 ’주장‘이냐? 세상에 태어나 책 한권 밖에 읽지 않은 페미니즘 좃문가들. 혹은 그런 페미니즘 좆문가들에게 반박하기 위해 그네들 주장을 뒤져보는 비전공자들은 페미니즘의 시작을 18세기 여성참정권 운동자들. 소위말하는 ’1세대 페미니스트‘를 시작으로 본다.
하지만 ’응 아니야‘
그건 후대에 와서 페미니즘의 성립과정을 정리하면서 만든 일종의 ’결과론적 산물‘이다. (22세기 중국이 내몽골을 점령하고 있다 해서 징키스칸=중국인 주장하는 짱깨들 마냥 병신소리라는 뜻)
똑같은 ‘-ism’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많은 사람들이 운동(운동권 할 때의 운동, movement)으로서의 ’-ism’과 학문적/사상적 단어로서의 ’-ism’을 구분하지 못하는데(또는 고의로 구분하지 않고 언급하는데)
소위 말하는 테러리즘(terror-ism)이라고 하는 것이 준내 시발 사람 죽이고 다니면서 물리적인 위력을 보이거나, 9.11 사건처럼 역사적인 방향을 일으킬지 언정 ‘아카데믹’으로서의 ‘학술적 가치’가 있다 할 수 있느냐고 하면 답은 ‘아니’라는 거다.
페미니즘은 자신을 대단한 ‘사상’인 것처럼 포장하고 다니기 때문에 그러한 ‘사상사’를 전공한 사람의 입장에서 대답하자면, 여권신장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은 분명 18세기 유럽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 맞지만 학문체계로서 편입을 시도한 것은 ‘시몬 드 보부아르’ 등으로 대표되는 2세대 페미니즘부터다.
자, 그럼 얘네가 등장하는 시기가 어떤 시기인가? 우리는 이 시기를 ‘포스트 모던’ 그중에서도 특히나 ‘전후 사상의 시기’라고 부른다.
포스트 모던. ‘모던’ 이후의 시기.
한국은 시발 인문학이 좃망한 국가라서 이게 뭔지에 대해 공통과정내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지만 글로벌 스탠다드 기준으로는 이것을 ‘2차세계대전의 종식 이후.’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딱 그 시점’을 기준으로 둔다.
한국인에게 있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폭탄은 민족 해방으로서의 맥락과 인과응보를 당한 원수(쪽본)의 꼬라지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지만 지금 당장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 투하된 미사일로 인해 죽어나가는 어린아이의 목숨보다 그로 인해 올라간 국제유가와 주식 폭락 따위를 훨씬 더 신경 쓰는 것처럼
유럽이나 신대륙의 대다수 지성인들은 동방의 좃만한 나라가 민족 해방을 이루건 말건 ‘인간의 이성. 또는 합리성이 만들어낸 끔찍한 대학살’로서 이 사건을 바라보았다.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말로 인해 시작된 유럽의 신-르네상스. 혹은 ‘근대성’이라고 하는 것은 기존의 시발 ‘예수님 말씀 잘 들으면 물구나무 서서 똥을 싸도 천국가요~’ 따위를 외치던 종교적 세계관의 한계를 벗어나
‘인간이 가진 이성의 능력으로, 우리는 더 나은 발전 혹은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를 더 밝은 미래로 이끌어줄 것이다’
‘그러니까 시발 인류를 계몽할 의무를 지닌 백인은 아프리카에서 니그로들 손목 좀 잘라도 된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니까.’ …같은 합리성(Rationality)과 과학의 뽕을 당대 지식인들에게 놓아주었다.
하지만 유태인 학살시키던 나치의 ‘아우슈비츠 가스실’과 미사일 한 발로 수십만명을 먼지로 만들어버린 핵폭탄의 등장은,
‘시발, 인간 행복하라고 발전시킨 과학기술이, 핵폭탄같은 대량살상 무기를 만들어버리네?’
‘하핫 이거, 착한 짓 하고 살라며 만들어놓은 종교(기독교)가 사람 죽여도 돈 내면 죄 사해주게끔 타락했던(면죄부) 흑역사 때 기억이 새록새록 샘솟는걸?’
‘이거 시발 우리가 쌓아올린 지식체계(과학/민주주의/산업혁명 등)가, 제대로 된 거 맞나..?’
..와 같은 트라우마 발작버튼을 눌러버린다.
(까놓고 말해 일본인이 죽은 게 문제가 아님. 지금껏 찍은 테크가 좆망인가? <-이게 중요한거)
그런 분위기가 깔려있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그 이후의 사상. ‘전후사상’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데카르트 이후 ‘근대’라고 불렸던 오랜 기간동안 쌓아올려둔 ‘합리성’이라는 가치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사람 머릿속에 든 게 우동사리도 아니고 우리 모두는 ‘합리성’이라는 걸 가지고 있으니까 기술개발 딸만 존나 열심히 치고 있으면 전 인류가 결국 행복해지지 않을까?>
<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온 우주의 기운 같은(헤겔식으로 표현하면 시대정신) 것이
우리 세상을 그렇게 이끌어 나갈 거야>
<그래 시발 바로 그 ‘시대정신’을 이 땅에 구현시키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인 거임>
..이라는 믿음이 사라졌다는 것.
과학이 철학에서 분과되어 나갔기 때문에 철학이 뇌정지가 오더라도 기술은 점점 발전해 나가기 마련이지만, 당대 지식인들에게는 한가지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아버렸다. ‘인간은 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개쓰래기와 비교하면 개쓰래기에게 미안할 수준의 인문학 전통을 가진 대한민국에서는 ‘너는 왜 사냐’는 물음에 ‘20대에 대학가고 30대에 취업하고 40대에 애 낳고 50대에 퇴직해서 60대에 벽에 똥칠하다 뒈지려구요’ ..라는 스탠다드한 대답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낼 것이고
‘왜 그렇게 사느냐’는 질문엔 ‘아 시발 원래 사는게 그런 거임. 공자 맹자가 그렇게 시켰음’ 하고 유교 탈레반 이상의 대답을 못 내놓겠지만
서구권에는 수천년간 이어져 내려온 ‘아님 말고’라는 전통이 있다보니
‘신이 시키면 하는게 맞다던데요? ..아님 말고. (진짜 안함) -> 종교혁명’
‘왕이 시키면 하는게 맞다던데요? ..아님 말고. (진짜 안함) -> 민주주의 혁명’
‘인류의 보편 이성이 그렇게 시키면 하는게 맞다던데요? …아님 말고. (진짜 안함) -> ???’
..와 같이
‘내가 왜 이따구로 살아야 하는지’
‘왜 사람을 죽이면 안되는지’
(실제로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왕 새끼 목을 치면 안 되는지 답을 못줘서 민주주의 혁명 일어남)
‘왜 북유럽 야만인 새끼들은 놀러 온 친구한테 밥을 안 주는지’
…라는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해줘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
그러한 상황 속에서 나타난 페미니즘이 어떤 주장을 했고, 왜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 병신취급을 받았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본론) 그래서 페미니즘이 병신인 이유 (핵심)
서론이 길었다. 근데 해당 전제를 기본적으로 깔아놓지 않으면, 철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상 페미니즘이 병신인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철학은 ‘가치’라는 주관적 개념을 다루기 때문에 상대가 100가지 팩트로 반박해도 ‘이게 더 중요하다’라는 한마디로 컷하는게 가능한 특이한 학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자칭 페미니스트라는 병신들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위와 같은 ‘전제조건’ 부분들을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걍 멍청해서 모르는 걸 수도 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페미니즘이 병신인 이유,
그것은 그냥 그 내용이 ‘아무런 이론적 독자성을 가지지 못한 빈껍데기’에 불과하며
그나마 그 껍데기조차 ‘당대 유행했던 전후사상들의 카피캣’에 불과하다는 점.
딱 이 두 가지로 정리된다.
우리는 전제부에서 철학이라는 학문의 기본적인 구조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것은
‘세상을 OO한 기준에서(인식론), XXX한 방식으로 해석하고(형이상학),
그러한 해석을 토대로 인간이 △△△하게 살아야 한다(윤리학)’
..라는 내용이었다.
철학은 세상을 보는 창(프레임)이고, 보통 그 프레임이 무엇인지에 따라 해당 사상의 이름이 정해지는데
페미니즘(Femin-ism)의 경우 그것은 ‘Femini-’즉 ‘여성성’이다. 세상만사 돌아가는 꼬라지를 하나의 기준을 통해 해석하자고 주장하는데 그 기준부터가 일단 ‘여성이 가진 생식기’라는 거다.
(이 해석이 올바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해당 학문의 이름이 human-ism도 아니고 Sexual-ism도 아닌 Femin-ism이기 때문이다. 기준의 근거가 인간이라는 범주 내에서도 ‘여성’이라는 일부로 특정되었는데, 페미니즘은 이론 내부적으로 남성인격과 여성인격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이론이 바라보는 세상의 기준은 여성의 생식기. ..혹은 아무리 잘 쳐줘도 남성과 차별되는 여성 호르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싯팔 이게 준내 골때리기는 한데, 철학은 본래 논리의 비약을 인정하는 학문이다. 만물의 근원이 물이니 불이니 하나님 말씀이니 하는 새끼들도 있었는데
여성의 생식기? 그럴 수도 있다.
왜 하필 ‘인간’의 생식기도 아닌 ‘여성’의 생식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치자. 똑같은 논리로 나치가 골상학이니 뭐니하는 유사과학을 들이대며 제노사이드에 이바지하였지만 그렇다고 치자.
중요한 게 ‘인간’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부분이라면, 우리집 키우는 찌릉이(코리안 숏헤어 고양이. 2세. 암컷)를 그 기준에 놓는 것은 왜 안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야기 세팅을 그렇게 해보겠다고 하는 거니까, 어쨌건 그렇다고 치자.
문제가 되는 것은 여성의 생식기를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설정’이 아니다. 그 설정을 깔아두고, 풀어놓는다는 이야기중에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고유의 이론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자, 우리는 서론에서 ‘전후사상’이라고 하는 것의 성립 배경과 그 맥락을 이야기한 바 있다.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던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는 ‘대량살상 무기’를 만들어냈고,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던 ‘산업혁명(특히나 포드주의로 대표되는 생산의 효율/체계화)’은 하루 10시간씩 기계부품처럼 일하는 노동자들의 인생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한 시간 일하고, 십분 쉬고.
(당시 기준) 주 6일, 회사에 출근해서 챗바퀴 속 다람쥐 마냥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쌉노잼 인생? 감수할 수 있다 이거야. 이렇게 버팀으로써, 내 삶이 풍요로워지고, 나아가 전 인류의 미래가 행복해진다면? ㅇㅋ
근데 시발 이렇게 만들어진 기계 부품이, 경제가, 자랑스러운 ‘문명’이 수백 수천만이 죽어나가는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한 큐에 수십만을 날려버리는 대략학살무기를 만들어낸 원인이 된다?
아 시발 그건 못 참지. 참지는 못하는데..대안이 있나?
모든 사람이 신을 믿던 시절, 인간은 삶의 이유에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살면 됐으니까.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에 말미암아 인간이 신으로부터 독립한 지금,
나(인간)라는 존재는 무엇이고, 왜 이땅에 태어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내 삶의 가치에 답을 내릴 수 없다면
인간의 삶은,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의 가치는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만약 인간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는, 무가치한 존재라면 살인이라고 하는 것은 왜 죄가 되는가?
—
이제 와서 보면 중2병같은 멘탈의 흐름이 아닐 수 없지만 이것이 당대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던 의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에 대답을 내놓으며 혜성같이 나타난 사람들이 있었으니
사르트르나 카뮈로 대변되는 ‘실존주의’ 계통의 철학자들이다.
얘네들은 대자존재니 즉자존재니 하는 개념들을 가져와서 당시 사람들이 가진 고구마 같은 심정에 사이다를 발싸! 해 줬는데. 쉽게 말하면 이런 거다.
—
시발 너,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루하루 똥싸는 기계처럼 사는 게 길가에 놓인 돌맹이랑 너가 뭔 차인지 모르겠다고? 하긴 맞아.
하나님 말씀 믿던 시절엔 네가 그래도 만물의 영장 소리라도 들었겠지만, 과학의 발달로 종교는 취존이 된지 오래지.
하다못해 길가에 있는 돌맹이와 비교해봤을 때 네 얼굴은 사실 돌맹이보다도 못생기지 않았냐?
하.지.만.
지금 당장 너는 돌맹이 같은. 오히려 돌맹이 이하의 가치밖에 가지지 못한 알등이일지 모른다.
그런데 잘 봐,
너는 길가에 놓인 ‘돌멩이’와는 달리 모자란 새끼기 때문에 얼굴에 비비도 칠하고 3대 중량도 늘리고 하면서 너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어.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길가의 돌맹이는 누가 건드리지 않는 이상 있는 그대로 돌맹이로서 존재하겠지만,
너는 ‘살아있는’ 존재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일 수 있고, 돌맹이보다도 더 위대한 망곰이가 될 수 있다고.
그것이 너,
‘사람(대자존재)’의 존재가 ‘사물(즉자존재)’과 다른 부분이고
그렇게 ‘스스로를 완성시키고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이 네가 존재하는 이유거든.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난 이유는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
..이 내용을 단순히 ‘문학적’으로만 받아들일 경우 단순히 갬동스런 멘트를 짜낸 것에 불과하겠지만
‘철학적’인 맥락으로 다시 바라볼 경우, 이전에 없던 새로운 개념들이 많이 제시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선적으로 이들은 인간을 ‘스스로의 가치 직접 만들어내는 존재’로 설정함으로써, 인간을 ‘실존’이라는 개념으로 재정립하였고(그래서 실존주의라고 부른다. 자세한 설명은 길어지니까 알아서 찾아봐)
그를 토대로 ‘아이덴티티(정체성)’라는 개념,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 등을 논의의 영역에 끌고 들어온다. 인간의 본질이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지 못하는 삶’은 기본적으로 제대로 된 인간의 삶이 아니다.
너는 하루하루 똥싸는 기계로 살 수 있지만 하루하루 똥만 싸고 사는 네 삶은 길가의 돌맹이를 넘어설 수 없다.
욕으로서 하는 비유가 아니라 그렇게 사는 너의 삶은
존재값 자체가 개만도 못한.. 아니, 길가의 돌맹이만도 못해진다는 게 이들 이론의 핵심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 인간은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자기 자신의 삶과 미래를 ‘결정’하여야하며 이러한 모든 것들은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자기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는 행위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고유의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자기결정권’
그리고 이렇게 자기결정권을 가진 인간은 돌맹이랑 본질적으로 다른 존잰데 나치고 아메리칸이고 사람을 무슨 길가에 돌맹이마냥 취급하니까 2차대전에서처럼 대략학살 무기 만들어내는 노양심 과학자들이 나오는 거다.
인간을 볼 때는 바로 너 자신처럼 상대방 역시 자기 스스로 결정권을 지닌 ‘실존’으로 봐야하지, 네 결정에 이래라저래라 따라야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면 안된다. 그래서 ‘실존’을 ‘대상화’하는 것은 윤리적인 잘못이다.
‘대상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실존주의는 기타등등 여러 가지 파생개념을 이끌어 내지만.. 자, 우리는 실존주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돌고 돌아 설명이 길어지기는 했는데.. 이처럼, 기나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자기결정권’이나 ‘대상화’라는 개념들을 우리는 이미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서? 페메니스트들에게서.
“사람은 사람을 대상화하면 안 된다.”
“왜?”
“아 몰랑. 원래 그렇다.”
여기서 ‘원래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철학’이 아니다.
지금까지 이 글을 열심히 읽어왔다면 ‘사람이 사람을 대상화하면 안 된다’는 저 말 한마디가 도출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전제가 붙었는지 체감했을 테니 직접 장황하게 설명하진 못하더라도
‘근대 이후 인류가 추구해온 보편적 합리성에 대한 반발로 전 인류가 아노미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종교도 과학도 인간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인간 실존>의 개념이 새로운 도덕률을 제공해주었으며, 이에 따르면 <인간이 인간을 대상화하는 것은, 인간이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존재 이유를 자기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와 같이 실존주의 이론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전반적인 맥락을 떠올 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위 페미니즘이라는 이론은, 그러한 앞뒤 맥락 다 떼어먹고, 남이 쌓아놓은 개념 앞에 한 단어를 붙이는데..
바로 ‘성적-(Sexual-)’이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여성을) 성적-대상화 하면 안된다.”
“왜?”
“아 몰라. 기분 나쁘니까.”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해야한다.”
“왜?”
“아 몰라. 안 지켜주면 기분나쁨”
혹시나 누가 시비걸까봐 하는 말이지만. 성적 대상화가 좋다는 말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그 내용들도 말만 보면 어쨌건 번지르르 하긴 하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a. 굳이 ‘성적’이라는 단어를 안 붙여도 ‘대상화’나 ‘자기결정권 침해’ 자체가 본래 해선 안될 짓이라는 것.
b.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이라는 단어를 붙임으로서 해당 개념을 통해 수혜받아야할 대상을 오히려 축소시켜 버린다는 것
(ex> 모두가 행복한 복지국가로 가야한다 -> 여성이 행복한 복지국가로 가야한다)
c. 애초에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개념이 아니기에 각각의 주장들을 모아놓으면 자기들끼리도 맞물려 떨어지지 않고, 사회적 담론과도 유리된다는 점 ( 대충 준내 쌩뚱맞은 개소리가 되어버린다는 소리. )
d. c에서 드러나는 이론 자체의 쌈마이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 몰라 기분 나쁨’의 개념을 사회담론의 영역에 끌고 온다는 것.
(철학이든 다른 사회이론이든 이 세상 모든 인문학의 근간은 원래 본래 논리학이다. 한국이야 인문학 자체가 사망한 국가라서 문과=암기과목 같은 소리나 해대는 거지.)
..이와 같은 부분들 때문에 내가 기억하는 ‘페미니즘’이라는 것은 태생적으로 마이너를 벗어날 수 없는 유사학문에 불과했다.
지금이라도 달라졌나? 글쎄, 여자 생식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는 프레임이 지들도 웃겼는지 젠더니 뭐니하는 거지같은 개념을 끌고 들어오긴 하던데.
이뿐만이 아니지.
여성비하적인 언어를 중립화한다며 ‘자궁’을 ‘포궁’이라고, ‘삽입생수’를 ‘흡입생수’라고 해야 한다며 주장을 하고 다니지만
이러한 ‘언어중립화’의 개념 역시 본래는 롤랑바르트 등으로 대변되는 ‘구조주의자’들의 이론이다. (참고로 구조주의와 실존주의는 서로 정 반대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라이벌 격 이론이었다. 페미니즘은 PSG인가? 바르샤의 메시와 레알의 라모스를 모두 가진..ㄷㄷ )
—
‘인간의 사유는 언어라는 옷을 입고 태어나므로’ 언어가 오염되어 있을 경우 인간의 사유 역시 오염될 수 있다. 그러니 특정 사상에 오염되지 않은 중립적인 언어 ‘에크리튀르’를 통해 그 어떤 편견이나 곡해를 배제한 채 사유해야 우리는 찾고자하는 진리값에 도달할 수 있다.
—
대충 이런 내용인데.
이것도 찾아보면 상당히 복잡하고 긴 과정을 통해 그렇게 해야하는 당위성을 증명해낸 계파의 이론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그딴 거 없지.
“여성성이 드러나 있는 현재 명사들을 다른 것으로 바꿔야한다.”
“왜?”
“기분나쁘다”
..시발 그건 니 사정이고.
사람이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면 안 되는 거? 맞다.
하지만 굳이 공리주의적 판단이니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니 하는 말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기분’의 문제라는 것은 둘 이상만 모여도 충돌하기 마련이다.
‘자궁의 자(子)는 아들을 뜻하니 중립적인 의미에서 포궁으로 바꿔야한다’
-> 그래. 그럴 수 있지.
‘삽입 생수는 남성 관점으로 만들어진 단어라 여성이 기분나쁘니 흡입 생수로 바꿔야 한다’
-> 그런 관점이면 흡입생수는 여성 관점으로 만들어진 단어라 남성이 기분 나쁠텐데?
‘낙태는 사회통념상 이미지가 나쁘니 임신중단이라는 단어로 바꿔야 한다’
-> 이미 언어중립화와는 거리가 멀어진 거 아닌가?
기본적으로 언어든 뭐든, 기존에 사용하고 있던 완성된 체계를 새로운 무언가로 변경하는 데에는 비용이 지출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단순히 ‘귀찮음’이라는 심리적인 비용일 수도 있고,
행정적인 차원에서 오는 실질적인 비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주의자들이 ‘언어의 중립화’라는 개념을 추진하자 하는 것은 그들의 관점에서 그것이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전달되는 의미의 왜곡비율’을 감소시키고 인류가 좀 더 진리값에 쉽게 가까워질 수 있도록 이바지함으로써
결국 그러한 모든 비용들이 ‘사회 전체의 발전’이라는 공공선을 창출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특정 언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 그래, 고쳐야지.
하지만 그렇게 고친 결과물이 다른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언어를 바꿔달라.
중립화? 아니, 내가 원하는 것은 그냥 내 입맛에 맞는 세계관으로 모두를 가스라이팅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그리고 우리사회 모두는 내가 원하는 대로 언어를 변경해야한다.
왜냐? ‘언어 중립화’는 있어 보이고, 그럴싸해 보이며 유명한 누군가가 좋다고 했던 개념이니까.
애당초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논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논리는 기본전제부터가 뒤죽박죽이다.
그리고 그런 뒤죽박죽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인지감수성’이라는 개념을 논의의 영역에 끌고 들어온다.
시발.
대꾸할 가치도 없는 개소리기 때문에 결론만 명확하게 제시하자면
이처럼 공적인 영역의 논의에 ‘감성’이라는 개념을 끌고 들어와 당위성을 주장하는 행위를
논리학에서는
‘동정에 호소하는 오류’이자, ‘사람에 호소하는 오류’, ‘군중에 의거한 논증’으로 정의하고
철학에서는 이를 ‘반이성주의’라고 부른다.
대가리에 우동 들어차 있냐는 소리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수천년간 이어져 온 아가리 파이팅이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남이 했던 이야기나 그대로 배껴 쓰는 카피캣을 독립된 학문분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길을 가다 만나게 된 멧돼지가
“당신의 OOO는 ‘성적 XXX’를 침해하기 때문에 나쁜짓이다, 췩! 뭔 말인지 모르겠으면 공부해라..! 췩!”
하고 오크 멱따는 소리를 지껄이면
‘성적’이라는 단어를 뗀 ‘XXX’를 네이버 초록창에 검색해보라.
십중 팔구는 있어보이는 외국인 사진과 함께 20세기 후반의 어떤 사상가의 사진과
XXX에 대한 이론이 떡하니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검색결과를 보여주며, 네가 하는 말은 결국 이 사람 말의 카피캣이 아니냐 따지면?
할 말 없는 그 멧돼지는 오돌오돌 떨다 결국 삼겹살 먹을 시간이라며 도망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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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여성의 생식기>를 통해 바라볼 수 있고
그렇게 바라본 세상을 <어디서 베껴온 내용>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니
인간은 △△△△라는 행동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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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이야기의 논리 구조는 결국 이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
( 예시로 든 것은 실존주의와 구조주의 뿐이지만 맑시즘이나 기타 다른 학파의 이론에서 가져온 것들도 많다. )
결론) 그래서 페미니즘은 결국 해병수육조차 건지지 못할 기열찐빠인가?
그렇다.
‘여성인권신장운동’이라는 ‘무브먼트’의 영역에서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을지언정,
적어도 ‘학술적인’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제대로된 학문은커녕 나치즘에 비견될만한 유사과학 나부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전후사상적 맥락에서 페미니즘이 ‘잠깐’ 주목을 받았던 이유를 설명해보자면
그것은 ‘가부장제의 해체’라는 떡밥을 걔네들이 제시했기 때문이다.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인간이 가진. 사상과 생각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다.
영어를 쓰는 사람과 한국어를 쓰는 사람.
그베어를 쓰는 사람과 근근웹어를 쓰는 사람
유교의 관습 아래 자란 사람과 기독교의 관습 아래 자란 사람.
이들 모두는 똑같은 정보가 ‘입력’되더라도
다른 방식의 ‘처리과정’을 거쳐
상반되는 ‘결과값’을 입밖으로 내뱉는다.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된 ‘이데올로기’라고 하면
비전공자 대부분은 그게 무슨 말인지조차 이해 못 하는게 대부분일지라도
전공자들 입장에서는 ‘가부장제’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 맑스의 유물론적 역사학을 짚어보면
원시 모계 공산사회로부터 농경사회로 접어들며 잉여재산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부계사회로의 전환을 거치며 지금과 같은 가부장제 시스템이 전세계적으로 정착했다.
그리고 우리가 소위 ‘문명’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은 그러한 가부장제 시스템 위에서 지금껏 성립되어 왔다. )
철학적 관점에서,
현실 세계의 <빨간 사과>라는 존재가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Red apple’일 수도,
‘赤いリンゴ’일 수도,
‘완전 빨갛지는 않고 대충 불그스름한 정도의 붉음을 가진 사과’일 수도,
‘#f11919 값의 색상값을 가진 apple.png’일 수도 있다는 결론해 도달해 있는 상황에
지금까지는 UTF-8(가부장제) 포맷 only로 구현해본 사고체계를
ANSI와 같은 다른 포맷으로 다시 짜볼 수 있다?
‘이건 못 참지’ ..라는 거거든.
만약 누군가가 이러한 맥락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어떤 학술적 가치를 부여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대다수의 철학자들은 그러한 시도가 ‘무가치하다’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직접 하진 않을지언정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정도까진 받아준다는 소리.
하지만, 이건 온갖 극단주의를 ‘이해’하는 그쪽 사람들 차원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고,
실제 현실에서 가부장제를 깨부순다는 소리는 뭐다?
<‘가족’이라는 시스템의 파괴>를 의미한다.
딱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끼리 우애있게 지내고
..같은 유교 탈레반 같은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가부장제’라는 게 뭐냐
결혼이라는 제도가 탄생하기 전,
남자와 여자가 난교를 하고 돌아다니던 동물의 왕국 시절에
1. 남자와 여자가 모아온 재산 중 자식에게 물려줄 만큼의 여분 재산이 (농경제의 도입으로 인해) 발생했다.
2. 근데 가모장제(여자가 가장 역할을 하는 제도)로 결혼을 진행시키려 하니까 이놈 저놈하고 붙어먹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식놈의 애비가 누군지 모르겠다.
3. 여자 입장에서야 반은 제 새끼 맞으니까 상관없지만 남자 입장에선 내 새끼 맞는 지 아닌지도 모르는 놈에게 내 재산 물려주기 꺼림칙하단 문제가 발생한다.
4. 남자랑 여자가 일대 일로 결혼하고, 여자가 바람 안 피운다는 상황(가부장제 사회)을 만들고 나면 남자와 여자 모두 남의 씨앗 섞일 걱정 없이 온전히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줄 수 있다.
..이거 거든?
여자에게 순결을 강요하는 순결주의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좋은 것은 아니라지만
어쨌거나 남자와 여자가 일대일로 만나 바람피지 않고 연애하는 관계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가족, 친척, 혈연이라는 모든 관계들.
(애미 애비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부모님에 대한 사랑,
(같은 씨앗이라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형제끼리의 우애
..이 모든 것 역시 가부장제의 산물이라는 말이지?
애시당초 추상세계에서의 이론을 다루는 철학자들 입장에서
(그게 실현 가능하다면) 그럴 수도 있다. ..라고 생각 할 수는 있거든?
그런데 자칭 페미니스트라는 분들은 그걸 ‘현실에 구현해야’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야?
왜냐하면
‘페미니스트가 존재하는 유일한 학술적가치는
애미애비 없는 사회를 만들어 인류를 가부장 제도의 억압으로부터 구원하는거다.’
..라는 프레이밍에 빠져들어 있으니까.
이야..
사실 나도 전공자 나부랭이니까 그런 사회가 가능하다면 어떤 사회가 될지 궁금하긴 해.
그런데 왜 얘네는 그런 자신들의 ‘범인류적 대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꽁꽁 숨겨두는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맑스주의를 외치며 세상을 뒤집었던 공산주의자들조차
자본 독점의 해체를 통해 공산주의 낙원을 펼치겠다는 자기들의 대의를 쪽팔려서 숨기고 다니지는 않았는데.
..여튼 그렇다.
철학이라는 학문 내에서 특정 이론을 평가할 때는 해당 이론 하나만 가지고는 결론을 낼 수 없다보니 부득이하게 말이 길어졌는데..
(적어도 이론적인 차원에서) 페미니즘은 병신이 맞다.
실제로 성차별적인 폭력을 당해 힘들어하는 여성들을 케어하고
자신들끼리 연대를 독려하는 ‘운동(무브먼트)’차원에서의 ‘페미니즘’은 나도 분명 가치 있다고 생각해.
근데, 그놈의 페미니즘이라는 거,
이론적인 차원에서는 그야말로 ‘명석 판명’하게 병신이 맞어.
그러니 시발.
되지도 않는 땡깡 부리면서 ‘모르면 책을 읽으세요’ 이 지랄들은 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병신소리를 주장하려면 병신소리에서 끝내야지
감수성이니 뭐니 별 거지같은 개소리, 공공논의의 장에 끌고 오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2022년에 와 가지고 반세기 전에나 유행하던 반이성주의의 산물,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의 괴물을
사람들이 왜 이렇게까지 들먹이는지 그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