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군사력인 힘은 말할것도 없고 사회 경제적으로도 굉장히 발달한 나라이며 당연히 행정력 역시 발달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조직들이 있었음
물론 치안 안 좋은 할렘가 갱 이런건 대중적으로도 이미지가 박힐 정도지만 어쨌든 이런 사람들은 기껏해야 점조직, “총 쏘는 깡패들” 정도 이미지라 미국 아무리 선진국이라고 해도 깡패들 좀 있다 이런건 그렇게 이상한 느낌도 아님
그러나 의외인건 바로 ‘마피아’ 같은 대형조직들.
물론 좀 오랜 예전이야 마피아 조직들이 활개치고 다녔다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고,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알 카포네’ 같은 사람도 1899년에 태어나서 1947년 한국으로 치면 한국전쟁 하기도 전에 죽은 ‘역사시대 인물’ 느낌이라
“좀 예전에는 미국에서도 대형 마피아가 좀 설쳤다더라” 이래도 크게 위화감이 들진 않음.
대충 미국 서부시대의 끝, 무법자 시대의 끝의 경계선에 선 사람들 다루는 게임인 ‘레데리2’가 배경이 1899년이니까 한 20년쯤 지난 시점에도 양복 입고 도시에서 총 좀 쏘는 애들 있다고 해도 그럴듯함.
그러나 정작 미국에서 마피아가 가장 영향력이 컸던 시기는 알 카포네 같은 사람들 전성기였던, 역사시대 느낌인 20~30년대가 아니라 오히려 1950년~70년 무렵이 최고의 전성기였고 심지어 정말 현대 느낌 물씬 나는 1980년대 무렵까지도 위세를 떨쳤다고 함.
동네 깡패 갱단 정도면 몰라도 이런 초거대 무법자 범죄조직은 좀 혼란할때나 득세하는 느낌인데 오히려 초강대국인 미국이, 심지어 오히려 지금 이상으로 국제사회 개입력 영향력이 대단했을때조차도 한복판에서 득세했다는거.
다름 아닌 타임지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던 인물 100명 중에 하나로 꼽은 러키 루치아노. 알 카포네와 시대가 좀 겹치는데 당시 시카고의 알 카포네 보다 뉴욕의 이 사람이 진정한 최고 실력자였다고 함.
알 카포네는 가장 강력했던 마피아가 아니라 가장 유명했던 마피아.
루치아노는 당시 자기 지역 나와바리 지키는데 급급했던 미국 전역의 마피아 핵심 두목들과 만나서 위원회(The Commission)를 성립하고(알 카포네도 만났다고 함)
가장 중요한걸로 전미범죄연합체(National Crime Syndicate)를 창립했다 함.
루치아노 이전까지만 해도 규모가 큰 범죄 조직은 좀 폐쇠적인 면이 있고 혈통이나 인종 이런 공통점이 있으면 세력 확장을 꺼렸다고 함. 이탈리아 마피아가 잔인함으로 이름을 떨쳐도 그냥 이탈리아 동지들이나 하나둘씩 끌어들이는 그런 느낌으로 그러다보니 결속력은 단단해도 막 초거대 조직 느낌은 아니었음. 그런데 루치아노는 정규 조직원은 이탈리아계로 좀 제한두더라도 준구성원은 열어둬서 조직들이 이전보다 훨씬 대형화되고 이 과정에서 영향력도 커져서 당시 루치아노의 조직 밑에 존재하던 살인회사에서 죽인 사람만 무려 400~1000명에 달한다고 함.
당연히 여러차례 루치아노는 체포되었지만,
20번이 넘게 체포되었으면서도 교도소는 한번도 안감
그렇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던 루치아노를, 훗날 미국 대선후보까지 나가던 ‘토마스 듀이’ 검사가 작정하고 노려서 오랜 조사끝에 겨우 혐의를 입증하고 붙잡는데 성공함.
루치아노 밑의 부하들은 “듀이 죽여버릴까요?” 했는데 루치아노는 별일 아니라는듯 “사업에 안 좋으니까 관둬라” 라고 하고, 밑에 과격한 부하가 듀이를 진짜로 죽일 음모를 꾸미자 쓸데없는짓 못하게 오히려 그 부하를 죽여버림. 그렇게 감옥 들어갔는데 의미가 없었던게,
명색이 천하의 미국인데, 마치 멕시코 같은 나라 보스가 감옥 들어갔을때 마냥 교도소에 루치아노 전속 요리사 및 시종들이 따라붙어서 심부름 다 들어주고 교도소 내에서는 루치아노에게 굽실거리고 루치아노는 교도소에서 다이아몬드 반지 끼고 다님.
심지어 미국 정부 차원에서도 루치아노를 조심스럽게 다뤘는데, 당시 베니트 무솔리니의 영향 때문에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파시즘의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가 심했고, 그런 이탈리아계 미국인들 통솔하는데 루치아노 정도의 사람이 없어서 정부 요인들이 교도소의 마피아 보스 만나러 수차례 드나듬.
그래서 50년 형 받은 루치아노는 교도소에서 10년간 왕처럼 지내다가 협력 잘했다는 이유로 10년뒤에 국외추방으로 풀려남. 그 뒤로 조직은 남기고 영향력은 계속 행사하면서 본인은 이탈리에서 지내다가 죽음
루치아노가 죽고 이탈리아와 미국에서 장례식이 열렸는데
미국 장례식에 무려 2,000명이 넘게 왔다고 함.
루치아노야 1910년~1940년대 전성기를 누린 사람이라 “아 대단했긴 했구나” 싶어도 걍 그러고 마는데 진짜 확 체감이 되는건 바로 그 뒤의 ‘카를로 감비노’ 시절 50년대 ~ 70년대를 지배한 사람으로 저 사진만 보면 사람 좋은 할배처럼 생겼지만 미국 조직범죄 역사에서 역사상 대단한 거물 이었다고 함.
이 사람 시절이 마피아가 가장 위세를 떨치던 시절. 루치아노가 떠난 이후 남은 구성원들의 항쟁에서 승리해서 미국의 1인자가 되었고, 이후 엄청난 영향력을 퍼뜨렸는데
일설에 의하면 감비노 중심으로 천하통일된 미국 최고 마피아 조직 20개의 범죄수익은 70억 달러
당시 미국 최대 대기업 10개의 수익과 동일했고 그 정점이 감비노였다고 함.
성격도 매우 치밀하고 결코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도 않아서, 하루는 어떤 마피아 지부장이 술김에 “감비노 이새끼야, 니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냐” 하고 욕하니까 거기서 화내는대신 걍 침착하게 무시함.
그리고 다음날부터 그 욕한 사람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더니 며칠뒤에 콘크리트 더미에 박힌 시체로 발견됨. 당연히 미국 정부에서도 수차례 감비노를 잡으려고 시도했지만, 영향력이 너무 엄청나서 위협조차도 되지 못했음.
마피아 물의 바이블인 대부 1 영화 촬영도 바로 이런 마피아 위세가 절정에 달했을때 찍었는데 이런저런 마피아들이 촬영장에 와서 훈수 든다고 설치느라 분위기가 안좋았다고함. 비토 콜레오네가 거리에서 총 맞는 촬영할때도 이런 마피아들때문에 촬영장 분위기가 안 좋았는데,
그런데 어느순간 마피아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함. 왜냐면 저 맞은 카파에서 측근 폴 카스텔라노랑 보디가드 2명 거느린 한 늙은이가 촬영장 보고 있었는데 그게 감비노라는걸 깨달은 마피아들이 혹시 시비 잡힐까봐 겁에 질려서 달아난거.
평소에 카페에 자주 앉아서 이탈리아계 소시민들이 이런저런 부탁하면 들어주곤 했다는데 마침 대부 촬영하고 그날이 겹쳤음.
감비노 장례식때 모인 인파
1976년이면 20~40년대 하고도 또 다른 시절인데,
저 시절에 마피아 보스 죽었다고 저 정도로 엄청난 행렬이 몰려듬.
이런 마피아를 공격할 수 있는 FBI의 70년대까지 보스는 그 유명한 ‘에드거 후버 FBI 정보력으로 온갖 유명인 감찰해서 약점 잡고 대통령마저도 부담스럽게 한 악명 높은 인물인데, 그런데 유독 이런 후버조차도 마피아들에게는 물렀음. 후버 밑의 부하들은 마피아를 조지자고 후버에게 간청했지만 후버는 미적거렸을 뿐만 아니라
“마피아는 그냥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판타지 같은 존재다. 그런거 없다. 없는걸 어떻게 조사하겠느냐.”
이런 태도를 유지하며 (결과적으로) 마피아를 비호해줌.
그래서 마피아가 후버의 게이섹스 영상을 가지고 있다던가, 마피아가 후버의 여장섹스 영상을 보유하고 있다던가 후버가 도박 중독인데 이걸 마피아에게 도움 받고 있다던가, 강경한 반공성향인 후버가 공산주의자들 족칠때 쓸 도구로 마피아를 좋게 봤다던가, 감비노와 친분이 깊았다던가 루머가 많음.
FBI가 마피아와 사활을 건 전면전을 펼친건 후버가 물러난 뒤 10년은 지나서야 가능했음.
감비노 사후 감비노의 조직 ‘감미노 패밀리’는 그가 후계자로 지목한게
폴 카스텔라노
감비노 생전에 패밀리의 ‘합법적인 면’ 을 담당한 사람이라 조직 보스 보다는 사업가 느낌이었다고 함. 뉴욕 맨해튼의 모든 건설 부분에 영향을 끼치면서 자기쪽 계약이나 물건 안쓰면 조직을 동원한 협박으로 강제적으로 서명하게 해서 수십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수입을 챙겼다고 함.
이 당시 마피아의 위세를 엿볼 수 있는 카스텔라노의 말이 있는데,
“만약 미국 대통령이 똑똑한 데다 도움이 필요하면 날 찾아올 거야. 그럼 나는 대통령을 위해 호의를 베풀 수 있지.”
어디 무슨 남미 막장 치안 나라도 아니고 1980년대의 미국에서 저런 말을 태연하게 하는 수준..
그렇게 1980년대 중반까지 번성했으나 보스라기보단 사업가적인 면모 때문에 부하들과 기질이 잘 안맞았고 본인이 부하들 다루는 처세도 별로라 점차 불만이 누적되다가
실제 카스텔라노 암살당한 사진
결국 1985년 암살 당하고 ‘존 고티’ 에게 자리를 뺏김
감비노 패밀리의 존고티
루치아노부터 이어진 제노비스 패밀리의 빈센트 지간테
고티의 쿠데타는 규율을 어겼다고 해서 다른 거물들의 분노를 샀고,
이 과정에 또다른 거물인 빈센트 지간테는 아예 고티를 죽이기 위해 거리 한복판에서 폭탄 테러까지 시도했는데
고티는 살고 감비노 패밀리의 부두목만 죽이게 됨.
차량 폭탄 테러 당한 차
당시 존 고티는 마피아 두목인데도 불구하고 타임지 표지까지 장식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았고 본인도 연예인 기질이 있어서 여러모로 네임드였음. 당시 코미디 방송에서 분장하고 존 고티를 만나러 마피아 아지트로 찾아가는 방송 몰래카메라도 다 고소 안당하려고 사전에 합의한다는 미국이니 저것도 걍 대본이고 미리 좀 이야기가 된거겠지만 아무튼 대중 방송에서도 저럴 정도로 네임드가 있었음.
저렇게 방송에서 코미디한 모습 보여주기도 하는 반면에, 대통령이고 방송국 사장이고 온갖 사람들 욕하는 입담으로 엄청난 인기를 모은 라디오 방송의 하워드 스턴이 고티가 잡혀서 재판 받고 세간의 화제될때도 관련 화제는 한번도 입에 안 올리고 그것까진 그러려니 하는데 게스트가 관련 화제 꺼내면 황급히 말 막고 주제 돌리는 등 모두까기 컨셉러조차도 언급을 극히 꺼림. 반면 ‘커티스 슬라’ 라는 사람이 자기 라디오에서 고티를 사회의 적이라고 욕하자,
바로 야구 방망이로 습격당해 얻어 터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욕 하자 택시에서 총격까지 당하고 겨우 목숨 건져서 달아남
당연히 존 고티에게 살해 혐의 씌어졌는데 증거가 없어서 이 혐의는 유야무야됨.
또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 (한국에선 노래 마이 웨이로 유명)
마피아들이 이탈리아계가 많다보니 당연히 마피아들하고도 연관이 많았고
특히 마피아의 대부 러키 루치아노와는 꽤 막역했다고 함.
시나트라는 감비노 등과의 친분 등은 부정했지만 FBI는 실제로 시나트라와 마피아의 관계를 조사해서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남겼음
https://vault.fbi.gov/Frank%20Sinatra
여기에 따르면 시나트라가 원래 마피아랑 때기 힘든 사이였던건 맞지만 나중에는(시나트라가 케네디 대통령과 친해진뒤) 좀 멀어졌다고 함 여하간 시나트라의 공연에 언제 존 고티가 초대되었는데 공연 끝나고 같이 식사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시나트라가 몸상태가 안좋아졌다며 취소함. 그런데 다음날 존 고티가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 가보니 아프다고 약속 파토내고 웃고 떠드는 시나트라가 보임.
그래서 자기 부하 보내서 경고함
“다음에 또 약속을 파토낸다면, 그땐 좀 그럴듯한 변명을 준비해라.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죽여버리겠다.”
다만 유명세와 별개로 암흑가에서 실제로 당시 더 강력한 사람은 빈센트 지간테였고 고티는 지간테를 두려워 했다고 함. 그렇게 이젠 시대가 70년대도 아니고 무려 1990년대까지도 마피아 두목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수사당국에서 끈질기게 증거를 추적하고 결정적으로 부두목이 배신하고 불어버리는 바람에 92년 고티는 무기징역 선고 받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옥 안에서 교도관들까지 고티에게 굽신거렸고,
랍스터 먹고 코냑 마시고 시가 피우면서 지냈다고 함.
이후 고티가 죽은뒤에도 운구를 운반할때 이 정도로 인파가 몰리며 영향력을 보였다고 함
이후 빈센트 지간테도 체포 되었는데
본인의 정신질환자 연기 + 변호사들로 버티다가 배신한 조직원의 증원이 결정적이라 결국 수십년의 형을 선고 받음. 근데 그 조직원이 말기암이라 3개월뒤에 사망해서 만약 3개월만 더 시간 끌 수 있었으면 전체 무죄도 가능했던 상황. 그렇게 감옥 들어간 뒤에도 오히려 쌩쌩하게 옥중에서 영향력 펼치며 여전히 조직 경영하며 2000년대까지도 마피아의 영향력을 유지하다가 05년에 사망함.
범죄조직이야 어디든지 있고 지금도 이런저런 패밀리들이 기업형으로 진화해서 여기저기 밀착해서 세력을 떨치고 있을 수 있지만, 특이한건 1970년대는 물론이고 심지어 1990년대까지도 미국에선 마피아 보스들이 타임지 표지 심심하면 장식하고 TV틀면 마피아들 이야기가 나오고 마피아 거물들이 연예인들마냥 언급될 정도로 유명세가 상당했다는것.
오히려 마피아들 입장에선 별로 부각 안되면서 여기저기 기업형으로 돈 빨아먹는 지금이 더 실속 있을 수는 있지만, 미국인들은 90년대까지만 해도 거물급 마피아들 유명세와 영향력을 느끼고 살았음. 마치 종로의 김두한이니 구마적이니 신마적이니 하는것마냥 90년대까지도 고티가 더 쎄니 지간테가 더 쎄니 요즘 애들은 별로지 감비노가 진짜였지 이랬다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