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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약자주의) 낙태하는 과정, 썰

Posted on 5월 29, 20225월 8, 2023 by Daniel J.

낙태하는 과정 낙태하는 과정

​

​

머리를 으깨 끄집어내는 경우도 ….

하지만 그 순간은 어떻게 해서든지

끄집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별다른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

​

막상 끄집어낸 태아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게 마련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이물질이 들어오면 살기 위해

자궁 안을 필사적으로 헤

집고 다니기 때문에 여기 저기 충격이 가해져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다.

​

​

특히 다리 부분은 시커멓게 죽어있다.

그런 태아들을 보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측은함이나 생명의 존엄성 따위보다는

몹시 기분이 나빠진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

​

그 당시 우리 병원 분만실에는 미혼에다

나이 어린 간호사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사(死)태아 처리를 모든 꺼려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애들을 다그치기 보다

차라리 내가 처리 하는게 낫지 하는 생각으로

끝까지 일 처리를 담당했다.

​

​

그렇게 꺼낸 태아들은 바로

한지에 싸서 냉동창고에 넣어두면 死태아

처리를 하는 인부들이 와서 거두어 간다.

​

​

골프백과 함께 딸려 나온 태아는

대부분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처리하기가 쉽지만

손가락으로 끄집어내면

태아가 가끔 살아 있는 경우도 있다.

​

​

곧 죽을 것이 뻔한 그 태아들은

자신을 원하지 않는 세상에서 잠시 숨을 쉰다.

그러나 아무런 배려도 받지 못한 채 곧 숨이 끊어지고

死태아 처리반으로 직행하게 된다.

​

​

​

골프 백으로도 처리가 안되고

손으로 끄집어낼 수도 없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

​

​

​

발이 아니라 머리 쪽이 자궁을 향하고 있으면

잡아당기기가 힘들기 때문 에 링펄셉을

이용해 끄집어 내야한다.

​

하지만 그것도 안되면

자궁 안에서 분쇄를 해야 한다.

​

​

특히 머리를 분쇄하여

흡입기로 빨아 당긴다.

얼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아이를 끄집어 내놓고 보면

그 참혹함에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

나는 그런 수술이 있는 날

밤이면 꼭 기분 나쁜 꿈을 꾸곤 했다.

크고 검은 드럼통 옆에 서서 끝없이

아이들을 그 속으로 던지는 꿈이었다.

​

그런 꿈을 꾸다가 벌떡 일어나

한 밤중에 식은땀을 흘리곤 했다.

​

​

​

하지만 내가 분만실에

근무하는 조산사인

이상 그런 일을 피해 갈 수는 없는지라

나는 대부분 무감각하게 그 일을 하려고 애썼다.

좀 더 신속히, 좀 더 깨끗이

일 처리를 하는 것으로 나를 달랬다.

그리고 남을 대신해 내가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그 시절을 견뎠다.

​

​

6개월 이상 되어 유도 분만을

하는 경우 분만 때와 똑같은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제왕절개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

20대 후반인 임신 8개월의

이혼녀는 이제 아이가 필요 없게 되었으니

낙태를 해달라고 망설임 없이 얘기했다.

​

그러면서 고통을 느끼기 싫으니

아예 제왕절개로 해달라는 것이다.

​

8개월인 경우 제왕절개를 하면 아이가

살아 있을 확률이 대부분이므로

마취를 심하게 하여 아이를

죽게 한 후 수술한다.

​

​

​

​

​

​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살해되는 아이들 ….

개인병원에 있을 때는 보통

이틀에 한 번은 이런 수술을 했다.

​

​

내가 5년 5개월 동안 산부인과에

근무하면서 평균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유도분만을 통한 낙태아 처리를 했으니

얼마나 많은 아이가 무참하게

죽어 가는 일에 힘을 보탰는지 모르겠다.

​

​

​

​

​

​

보통 3개월 이전에 낙태를 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性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다.

​

​

​

그들은 임신을 한 것을 속히

알아차리고 깨끗이 처리하기를 원한다.

​

​

6개월이 넘어서 유도 분만을

통해 낙태를 하려는 사람들은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

​

​

​

​

​

첫째는 이미 딸을 둔 부부가

다시 딸을 임신한 사실을 알고 난 후

낙태를 하는 경우이고

​

둘째는 청소년들이 임신한

사실을 몰랐다가 나중에 알게되어

뒤늦게 병원을 찾는 경우이다.

​

어느 날 딸들을 가진 부부가 만삭의

몸으로 병원을 찾아와

낙태수술을 해 달라고 말했다.

​

그들은 생활이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도

않았고 또 공부를 많이 한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

딸은 둘이면 충분하니

낙태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

​

​

​

​

​

그때 그 부인은 9개월이

가까워 오는 시점이어서 배가 남산만했다.

유도분만을 한 후 산모는 회복실로 옮겨갔다.

어난 아기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않은 채.

그렇게 해서 태어나는 아기들은

대부분 여러 가지 충격에 의해서

죽게 마련이나 그 아기는 살아 있었다.

​

​

죽어야 할 아기이므로

태어나면 누구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

​

간호사들이 약이나

주사기를 담는 스테인레스

통을 바트라고 부르는데

거기다 담아서 한쪽에다 밀어 놓는다.

그날 유도 분만으로 태어난 아기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대로 밀어 놓았다.

​

우유도 안주고

목욕도 시키지 않았다.

​

그렇게 방치하면 대부분의

아기들은 곧 죽게 마련이다.

​

​

그런데 다른 병실을 둘러보고

돌아와 보니 어린 간호사들이 난리가 났다.

세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기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아주 드문 경우였다.

​

나는 곧바로 아기에게 달려가 보았다.

쌕쌕 숨소리를 내는 그 아기는 분명 살아 있었다.

순간 이 아기를 살려 입양기관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기를

더운물에 씻기고 배꼽처리를

한 다음 인큐베이터에다 넣었다.

​

​

세 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었던지라

아기의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래서 따듯한 물주머니를 만들어

발치와 몸 위에 올려놓았다.

​

그 아기가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밤 10시쯤 전화가 왔다.

아기가 죽었다는 것이다.

​

그 아기를 처리하기가

무서운 간호사들이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부랴부랴 달려가 보니 아기는

가련하게도 죽어 있었다.

​

나는 그 아기를 정상적으로

태어났다가 죽은 아기와 마찬가지로

솜으로 여기저기 막고 잘 싸서

냉동창고에 넣어 주었다.

​

​

​

​

​

​

너무나 쉽게 아기를 죽이는 부모

간혹 살아서 나오는 아기들을 보면

주로 여자 아기들이다.

​

​

여자들의 생명력이 질기다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

​

간혹 미숙아들이 태어나면

인큐베이터에다 넣는데 그럴 경우에도

여자아기들이 죽는 경우는 드물다.

​

​

​

​

​

​

간혹 살아서 나온 아기들

때문에 일을 치르고 나면 가슴은 아프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

​

단지 그런 아기들을 처리하면서

다시 세상에 온다면 좋은부모에게서 태어나

행복하게 살라고 마음속으로 빌어준다.

​

​

​

​

​

​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이 몇 개 있는데

난쟁이 아기가 태어났을

때의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기가 죽었다고 말한 후

우리에게 아기를 없애달라고 하였다.

​

​

당시만 해도 나는

입양기관이 어디 있는지 잘 몰랐고

내가 주도적으로 일 처리를 하는

입장이 아닌지라 의사의

지시에 그대로 따르는 편이었다.

갓 태어난 난쟁이 아기는

한 모금의 우유도 먹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

​

부모가 원하지 않는 아기이므로

병원에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

​

바트에 넣어 그냥 두면 그 아기는

그대로 죽어버리고 만다.

입양기관에서도 기형아들은

데려 가지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아기들을 입양시키기도 사실은 힘든 일이었다.

​

​

​

​

​

또 한번은 항문이 없는 아기가 태어났다.

그 아기는 몇 번에 걸쳐 수술을

해야만 정상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다고 했다.

수술비만 해도 3천만 원이 든다는 얘기였다.

그 아기의 부모는 그 정도 돈을 들일 수

없다면서 아기를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

​

​

​

그 아기에게는

아주 조금씩 우유를 주었다.

​

​

많이 먹을수록

일찍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 아기는

더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

결국 그 아기는 사흘만에

얼굴이 노랗게 되어서 죽고 말았다.

​

그 후에도 단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분만 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낙태를

시켜 달라는 부인들을 수없이 만났다.

​

8개월이 지나 명백히 딸이라고

판정이 되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낙태를 하는 것이다.

​

보통 3개월 이전에는 간단히

흡입기로 수술이 되기 때문에

​

살인이라는 생각을 별로 가지지 않지만

6개월 이상 되는 태아를

​

유도 분만하는 행위는

명백한 살인 행위임을 부인할 수 가 없다.

​

​

​

나는 눈 코 입이 선명한데다

손발이 버젓이 있는 그 아기들을

끄집어낼 때마다 아기를

살인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

​

조금 작을 뿐인 그 아기들은

갓 태어난 신생아와 다를 바가 별로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들 선호사상과

인명 경시 풍조로 인해

​

불과 두 서너 달 후면

태어날 아기들이 무참히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

​

​

​

​

가방을 들고 병원 찾는

여고생도 고등학생들도

유도 분만을 통해 낙태하는 경우가 많다.

​

청소년들이 임신을 하는 때는

주로 크리스마스와 바캉스 철이다.

​

​

임신중절 수술을

하러오는 아이들의

달수를 따져보면 대부분

그때 임신한 것을 알 수 있다.

​

그 아이들은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다급해지면 달려와서

울면서 낙태를 시켜 달라고 말한다.

그때는 경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주로 어머니와 함께 와서 낙태를 하게 된다.

​

​

당시만 해도 간단한

낙태수술은 6만원 선이었고

유도분만은 50만원 선이었다.

한번은 고등학교 1학년인 두 아이가 일을 벌려

여자아이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주변에 알릴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복부를 동여매는 데만 급급했다.

​

​

원래 아이가 좀 뚱뚱해

어머니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 했다.

​

​

더 이상 숨길 처지가 되지 못한

​

아이가 울면서

어머니에게 일을 털어놓았고

급기야 남자쪽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기에 이른 것이다.

얼마나 꽁꽁 매놨던지 태어난

아기가 2.45 kg밖에 되지 않았다.

​

​

아기는 입양기관에 넘기기로 하였다.

​

​

문제는 남자 쪽 어머니 태도에 있었다.

두 집 다 그리 넉넉한 집안이 아니었는데

남자 쪽은 행여 수술비를 내야 할까봐

지레 발을 빼려고 안간힘이었다.

​

​

남자가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러냐는 식이었다.

​

​

딸 간수를 잘해야지 도대체

이게 뭐냐고 오히려 큰 소리였다.

여자 쪽 어머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못했다.

그저 수술비만 좀 보태달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보다 못한 내가 남자 쪽 어머니를

병원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

​

“당신 아들은 아무 고통도 당하지 않는데

저 집 딸은 어떠냐,

​

​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분만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

그리고 10개월 간의 악몽이 지워지겠느냐.

돈 몇 푼이 아까워 아픈 사람을

더 아프게 해서 되겠느냐.”

​

​

내가 마구 다그치자

그제야 아주머니는 잠잠해졌다.

나는 악착같이 남자 쪽

어머니에게 수술비를 받아냈다.

단 한번의 실수라던 말대로

처녀막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 여학생이 측은하기 그지없었다.

​

​

병원에 있으면 별별 일이 다 많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 얼굴이

두꺼워지는 걸 느낄 수 있다.

​

가방을 들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떼지어

병원으로 들어오는

고등학생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

그 아이들은 수술하러 들어가는 아이를

무슨 환송식 하듯 뒤에서

재잘거린다. “잘하고 와, 별거아냐” 뭐 그런 말을 한다.

그리고는 수술이 끝나고 나면 간단한 주사라도

한방 맞고 나온 것처럼

대단찮게 여기며

“아팠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

어쩌구 하면서 수선을 떤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분명히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병원에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불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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