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23일 공개된 일본 외교문서 중 천안문과 관련된 내용)
코로나로 정신없던 작년 12월 일본 외무성은 23일 기밀 해제된 1만600여쪽에 달하는 1987~1990년 작성 외교문서를 공개했습니다.
위에 보이는 문서는 일본 정부가 작성한 그해(천안문 사태가 벌어진) 6월 4일 자 ‘중국 정세에 대한 우리나라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문서로 “중국에 대해 제재 조치를 공동으로 취하는 것에는 일본은 반대”라는 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즉, 오피셜로 당시 일본정부의 반대로 천안문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결렬되었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죠.
시간을 거슬러 천안문 사태가 벌어진 1989년으로 돌아가보면 당시 서방국가들은 당시 중국에 대한 입장이 우호적으로 변하는 중이였습니다.
(당시 중국의 수장인 덩샤오핑과 미국 대통령 지미카터가 손을 잡은 사진)
덩샤오핑의 중국은 본격적인 개혁개방의 길을 나아가고 있었고 미국과의 관계도 꽤 좋아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경제는 개혁개방의 영향으로 점점 성장하는 중이였습니다.
(1989년 천안문에 모인 시위대)
문제는 1989년 천안문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됩니다. 중국이 분열될까봐 두려웠던 중국 정부는 시위대를 무력진압하기 시작하고 이는 서방 세계에 충격을 줬습니다.
천안문 사태가 발생하자 가장 먼저 중국 제재를 외친 것은 프랑스였습니다.
(천안문 사태 당시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
프랑스는 이전부터 티베트의 독립지지 같은 인권 문제를 주장하던 나라였습니다.
천안문 사태가 발생한 6월 프랑스는 국제사회에 ‘중국에 대한 대중제재를 요청’하였으며
7월 13일 미테랑 대통령은 G7 정상회담에서 미국, 서독,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등의 지도자에게 중국을 격렬히 비난하고 대중제재를 위한 공동 보조를 제의했습니다.
문제는 그 해 7월 7일 프랑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준비 회의에서 발생합니다.
프랑스의 주장으로 G6의 나라들은 모두 프랑스의 입장에 따라 ‘대중 비난 선언을 채택’하려 했으나 일본이 반대하고 나선 것.
이러한 반대입장에 대한 내용도 이번 외교문서를 통해 공개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1989년 중국 제재해 반대한 것일까요?
일본의 외교문서에 나와있는 이유로는 일본은 천안문 사건으로 혼란에 빠진 중국이 향후 국제사회에 복귀할 것을 기대해 구미(歐美)의 압력으로부터 중국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간 것이라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은 중국에 차관을 제공하고 있었고 중국이 개혁개방을 본격적으로 한다면 경제적으로 대중무역에서 일본에게 이득일테니 대중관계를 안좋게 가는 것을 기피한 것이죠.
이를 증명하듯 일본정부는 일시적으로 중국의 차관을 유보하는 제스처를 취하지만 이후 1990년 11월 2일 차관 공여를 정식으로 시작합니다.
당시 일본의 반대로 실패한 대중제재는 20년 뒤 중국이 G2로 도약한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한 편으론 만약 천안문 사태이후 ‘대중 비난 선언’이 통과되고 국제사회가 중국을 제재했다면 이후 중국의 인권문제가 나아졌을 수도 있을 것이란 의견도 존재합니다.
30년 뒤 미중갈등이 심화된 현 상황에서 과연 일본은 30년 전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해당 외교문서를 보도한 교도통신은 “경제협력을 통해 중국을 민주화로 이끌겠다는 일본의 외교전략이 주효했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당시의 일본의 외교를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출처: https://www.google.com/amp/s/m.yna.co.kr/amp/view/AKR20201223166100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