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보게되는
최인훈의 광장을 좋아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중립국 장면이 인상적일 것이다.
어디로 가겠냐는 인물과, 시종일관 중립국을 외치는 주인공
과연 여기에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중립국.”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장교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중립국.”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권리를 왜 포기하는 거요?”
“중립국.”
때는 625전쟁이 길어지면서 전선이 오가지도 못하고 고착화된 상황이며
미국은 정전협정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큰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포로협정이다.
포로협정이 왜? 그냥 자기 나라로 돌려 보내면 되는거 아니야?
제네바 협약에서는 전쟁이 끝나는 즉시 모든 포로를 ‘무조건’ 송환한다고 규정했는데 뭐가 문제야?
일단 첫 번째 걸림돌은 중공군 포로였는데, 당시 국공내전 직후로 공산당이 중국을 장악하였지만
그 기간이 짧지 않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으며 이와중에 대만으로 가지 못한 국민당원도 많았는데
고스란이 중국 공산당 소속이 되어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그렇게 되자 많은 중국군소속의 포로이자 국민당원이었던 사람들은 대만으로 가기를 희망하였는데
이것이 중국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두번째는 한반도 포로들인데, 짧은시간 국토의 주인이 바뀌었고 수복과 패퇴를 반복하다보니
지역이나 사상에 따라 국군이나 인민군이 된것이 아니라,
그냥 당시 점령지에 누구한테 강제징집 당하였느냐에 따라 소속이 달라졌다.
한강 이남에서 인민군에게 징집되기도 하였고, 한강 이북에서 국군에게 징집되기도 하였다.
그러다보니 지역이나, 소속에 따라 일방적으로 돌려 보낼 수가 없었다.
전체 16만 명의 포로 중 과반수가 북한이나 중국으로의 송환을 거부하고, 남한에 남거나 타이완으로 갈 것을 희망했다.
[출처: 중앙일보] [그때 오늘] 6·25전쟁 막후의 또 다른 전쟁 … 치열했던 포로 송환 협상
중공군은 출신에 따라서 모두 교환하자는 자동송환을
유엔군측은 포로의 개인 의사에 따라서 결정하자는 자유송환을 주장하였다.
*협상 중간에 이승만은 “한미 방위조약 체결 전에는 휴전할 수 없고, 반공 애국 동포를 북한으로 보낼 수 없다.”
라고 하며 헌병대를 동원해서 미군을 제압하고 3만7천여 명의 반공포로를 일방적으로 석방하는 일이 있었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1952년 12월 3일 유엔총회에서 인도 정부가 제안한 포로 문제에 대한 결의안이 통과됐다.
1953년 6월 8일, 포로 송환 협정을 맺어 귀국을 원하는 포로는 휴전 후 60일 내에 송환하기로 했다.
자유의사에 따라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으나 해당 소속국의 장교가 포로들을 설득하는 시간이 있었다.
맨처음 중립국을 외치는 부분을 보면 주인공은 인민군이었기에, 인민군 장교가 주인공에게 중립국으로 가지 말고 북한으로 오라는 설득을 하는 장면이다.
만약에 남한 북한, 중국, 대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송환거부 포로 2만2천여 명은 중립국 송환 위원회에 넘겨져 자유 의사에 따라 행선지를 결정하게 하였다.
중립국을 선택한 사람은 인도로 보내지게 되어 한동안 지내게 되며 기간이 지나면 행선지를 선택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이승만은 공산(소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기 때문에 인도는 부적합하다고 항의하였지만 별 수 없었다.
그리고 광장 소설의 배경은 중립국을 택한 주인공이 배를 타고 인도로 가는 중에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