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을 소개하였다면
이번에는 한국에 민족주의자는 어떻게 자리 잡았을까? 그리고 민족주의자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고, 민족주의를 왜 쓰레기통에 처박아야 하는가 대답을 하고자 한다.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칠때 우리는 반만년, 5천년의 역사를 가진 단군의 후손이다.
라고 민족의 정의를 내리는 것에 시작한다.
*물론 전편에도 써놓았듯이 한국 사학계는 민중사학, 민족사관 민족주의자들이 점령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선조는 단군의 후손임을 자각하고 살았을까?
전혀 아니다. 조선시대까지만해도 단군이 누구인지 존재조차 몰랐다.
단군이 알려지게 된것은 일제 강점기시절, 민족주의 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신채호 선생님이 ‘발굴’한것이 바로 단군이다.
*참고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신채호는 한적이 없으며, 그냥 출처가 불분명한글이다.
그때 당시 조선에서는 일제 강점기라는 국가적인 찬탈사건에 대해서 지식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피지배계층은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농민, 소작농같이 약자입장에서는 악질적인 지주, 양반에게 수탈당하나 왜놈에게 수탈당하나 거기서 거기였다.
오히려 양반들이 반대하였는데, 역사있는 조선이 무너졌다는 분개심이 아니고, 일본이 계급과 의복의 차별을 폐지한다고하니 감히 노비, 양민들과 호형호제 할 수 없다는게 주된 이유다.
…… 그래서 신채호를 비롯한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이것은 다른 문제라고 하기 위해서 내세운것이 민족주의고 민족의 의식을 고취시키며, 대중들을 결합시키기 위한 구심점으로 사용한것이 바로 ‘단군’이라는 존재이다.
민족주의는 자연스러운것이 아니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보니 민족주의는 순혈주의, 한민족을 강요하지만 엄밀하게 역사적인 내막을 들여다보면 한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상 상당히 많은 인종이 이동한것을 볼 수 있다. 고려때에는 아랍인만해도 1만여명이 살았고, 국제결혼 드문일이 아니었다.
발해 거란족 돌궐족 등등등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한반도에는 인종의 유입이 굉장히 많다는것을 알 수 있다.
근간을 살펴보면 굉장한 헛점이 많아 무너지기 쉽다.
하지만 이 사실을 깨닫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1945년 식민지에서 해방을 한뒤 독립국이 되었지만 우리는 한가지 선택을 강요받기에 이르렀다.
민족의 동질성 (남한 북한) 그리고 이념의 동질성 (대한민국 미국)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의 동질성을, 이승만같은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들은 이념(자유주의)의 동질을 선택함으로써 궤를 달리 하게 된다.이 문제는 오늘날까지 지루한 줄다리기를 하듯이 이어지며
민족의 동질성을 선택한 이후에 따라온것이 사회 공산 개념이다보니 진보세력 내에서도 힘겨루기가 있었다.
NL(National Liberation) 민족주의 통일문제 우선, PD(People’s Democracy) 노동자 계급투쟁우선 두가지가 대표적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김구 같은 경우 민족주의자였기 때문에 통일에만 관심이 있었을뿐 공산/자유진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적화통일에 찬성한 것을 떠올리면 알기 쉬울것이다.
이 문제까지 다루기에는 길이 너무길어지고 주제와는 미묘하게 어긋나므로 넘어간다. 간단하게 말해서 민족주의는 대한민국 진보운동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민족주의는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있다.
기사나 덧글을 볼때 민족주의적인 키워드를 떠올리면서 글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재미있는 현상을 볼 수 있을것이다.
민족의 일원으로서 경축한다. – 신해철
북한은 한민족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깔고 들어가는 글이다.
전편에 써놓았듯이 민족주의는 현상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민족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왜곡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전에도 적어 놓았던것처럼 북한이 핵을 가지면 사실상 우리꺼에요! 라고 하는 놈도 있다.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아웅산폭탄테러, 목함지뢰, 무장공비 침투, 수많은 대남도발을 감행하였지만 북한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뜬금없이 일본을 건들이면서 남한내의 민족주의자들과 연계해 일본이라는 외부의(가상의) 적을 만들어 민족이라는 동질성을 내세우며 마케팅을 펼치는 것을 볼수 있다.
일제의 만행으로 쓰러진 우리 선조를 생각해보라고? 황정엽이 말하기를 고난의 행군때 북한에서만 300만명이 아사했다고 한다.
자국민에게 엽색을 시키고, 핵개발에 미쳐서 아사하고 인육을 먹으며, 생체실험을 하는 북한이 할 수있는 소리인가?
그렇다면 민족주의자들은 이렇게 답변한다.
그거랑 그거는 다르다.
일본이라는 외부 세력이 우리 민족을 상대로 악행을 저질렀다.
그렇다면 자국이 자국민에게 악행이 괜찮다는 건가?
보편적인 인권문제를 민족이라는 필터가 씌워짐으로써 다르게 평가하는것이다. 저 양아치 유사 국가가 같은 민족이라는 한국에게 한 일이 뭔지 생각해보자. 참고로 민족주의자들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북한은 궁극적으로 남한을 도발한것이 아닌 미제 파쇼정권을 공격함으로써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는 기상천외한 답변이 돌아올것이다.
민족주의자들의 스탠드라고 보면 된다.
같은 민족, 동족, 우리민족끼리 라든가 말이다.
일본인 납북문제 기사에 있던 덧글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부당한 폭력으로 강제 납북되었다.
이것은 보편적인 인권문제 사항이며 사람으로써의 권리를 박탈당한것이다.
하지만 민족주의자들은 개인에 대한 부당한 폭력이 아닌 한국민과 일본의 문제로 들고 가버린다.
저 사람이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모른다.
한 사람에게 일어난 불행을 가지고 민족주의자들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우리랑은 상관없다. 더 나아가 쌤통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일본이 우리를 지배하고 악행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심각한 논리적인 비약이 존재하지만. 민족주의자들은 깨닫지 못한다.
하긴 깨달았으면 민족주의자가 아니겠지.
민족주의자 그리고 젠더, 페미니즘 문제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은 지금 되게 아슬아슬한 동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둘은 공존하지 못한다는것을 민감한 문제일 수 있는 위안부를 통해서 이야기 하고자한다.
이유는 바로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의 문제를 다루는 시각에서 기인한다.
*이 글을 처음 썼을때가 작년 이었는데,
지금 2019년 미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페미니즘이라는 거대한 괴물만이 남았을 뿐이다.
처음 외국에서 한국으로 미투가 들어오자 특정 진영 사람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상대방 진영을 공격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상황이 반대로 돌아간 것도 있다.
개인적으로 보았을때는 미투는 오래가지 못하고 실패할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민족주의자들로 본다.
내가 좌파, 민족주의자들을 혐오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사람의 도구화이다. 어느새 인가, 우리는 국가, 민족을 드높이는것이 중요한 과제이자 영광으로 포장되었으며, 영웅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국위선양이라는 말처럼 하지만 이것은 매우 위험하다. 사람을 도구화 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좌파가 사람을 도구화 시켜버리는 유명한 이야기 2008년도 당시 이명박정권때 미네르바라는 인터넷 논객이 있었다. 코스피가 900대 선까지 후퇴하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저점입니다. 주식사세요 라고 했고 미네르바는 주식이 500대 300대 까지 떨어질거라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허위사실유포, 선동으로 수감되었다.
그런데 수감되고나서 어떤 단체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면회가왔다고한다.
자살하라고
이명박 정권을 무너뜨릴 시발점이 될 수 있으니 자살하라고 했다.
이것에서 볼 수 있듯이 좌파는 사람의 대한 존중, 경외심 따위는 없으며, 도구로 보는 도외시만 남았을 뿐이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냐고?
민족주의자들은 여성을 민족의 하위 카데고리 즉 도구로 본다.
순결을 지켜야하며, 남성을 위해 봉사하며 민족에 이바지하는것이 민족주의자들이 보는 여성상이다.
*민족주의자들은 되게 가부장적이다.
그렇기 때문이 민족주의자들은 미투 운동을 사실 되게 띠껍게 본다고 할 수있다. 남성을 도와 민족의 번영을 위해서 이바지 해야할 여성들이 설쳐서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여긴다. (나도 이게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는데 진짜다.)
이번글은 사실 이 위안부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왔다. 페미니즘과 민족주의자들이 위안부를 다루는 시각은 전혀 다르다.
페미니즘 : 여성에 대한 비인륜적인 젠더폭력, 남성의 폭력성에 대해서 다룬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적인 공감대 연대가 쉽게 이루어진다. 남성 – 여성의 대결구도를 보인다.
민족주의 : 순결한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잔혹한 폭력에 대해서 다룬다.
한국 – 일본 민족적인 대결구도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공감대를 얻기 힘드며,
또한 얻으려고 하면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외세를 끌어들인다고한다.
페미니즘 차원에서는 광범위한 위안부 논의가 이루어 지지만
민족주의 측면에서는 대단히 지엽적인 것만 다룬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위안부에 조선의 창녀가 있었다 라고하면 거의 경기를 일으킨다.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이 있었는데, 어떻게 위안부를 모집하였고 운영되었는가 오랜 기간동안 조사한 책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위안부 생활을 통해서 막대한 돈을 번 위안부도 있었으며,
위안부 생활을 하며 받은 돈으로 다이아를 샀다.
위안부 생활을 하며 적금 통장도 만들어 보고 큰돈을 만지게 되었다.
매달 한번 휴일이 있었으며 조선에서는 먹을 수 없던 과일을 사먹었다.
아무말도 없이 가만히 있던 병사도 있었으며, 술을 마시게 해서 달래 주었다.
악어개죽 핸드백, 하이힐, 녹색 레인코트
아무도 나를 위안부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날의 기억은 아주 그립고 자신만만함이 되살아 났다.
저금해둔 돈 중에서 5천엔을 송금 했다.
조선의 창녀가 자발적으로 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것이 민족주의자들의 심경을 건드렸다. 여러분도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쁜가? 민족주의자들이 제 역할을 다했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위안부라고하면 순결한 처녀가 강압적인 일본군에 끌려가 희생당하고 처참히 유린당했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조선의 창녀도 있었으며, 실제로 위안부로 간 사람을 보면 있는집 자식이 아닌 없는집 자식이었고 돈을 위해서 자발적 매춘을 하였다고 글썻다가.
사회에서 욕이란 욕은 다 들어먹고 위안부할머니가 고소한 소송에서는 패소했다.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다.
순결한 조선의 처녀들의 일본군에게 강간당했다는 이미지를 통해서 민족주의적인 결합을 단단하게 하기 위함인데 이를 깨뜨리려는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한다는것에 거부감이 드는것은 이상한것이 아니다. 굉장히 오랫동안 조직적으로 암시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순결한 조선의 처녀가 일본에게 강간당하였다.
민족주의자는 이 키워드를 유지하기를 원하며, 엄밀히 말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생각도 없다. 이대로 대립구도를 지속시켜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민족에 대한 원동력으로 삼으려 들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위안부를 폄하하고 일본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정당화를 시키는것이 아님을 미리 말한다. 민족주의자들은 위안부문제를 민족의 결합용으로 쓰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단순히 도구로 삼은 스탠스를 취한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대표적으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중심에 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망설여 지는데, 한문장으로 요약하면
정대협이라는 단체는 민중당(구 통합진보당)과 긴말한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한신대학교같은 진보적 색체가 심하게 짙은 단체들과 긴밀한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찾아 보면, 결국 정대협이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삼고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는데
정대협은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무라야마 전 총리를 중심으로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단체가 성립하여, 비록 형식적으로는 민간자금기구였지만, 자금의 구성은 일본재정에서 충당하였으며, 이것을 통한 보상시도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상이 아닌 진정한 배상과 사죄를 원하기 때문에 이들 단체의 보상지원금의 수령이 거부되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일본 측의 위로금을 받기로 한 할머니들을 정대협이 비난하면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끼리 다툼이 있었고, 이로 인해서 위안부 할머니 중 33명이 떨어져 나가서 무궁화 할머니회라는 자체 조직을 만들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진정한 배상과 사죄의 잣대는 무엇일까?
위의 글을 보면알겠지만 일본은 수많은 사과를 했다.
현충원에서 참배도 여러차례했었다.
어쩌면 그 사람들에게 그런거는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사과를 하면 불편할려나
나중에 시간이 푼다면 글을 마무리 지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