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말은 포스터 모더니즘인데 정확한 내용은 인간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 했는지
시대순으로 시작해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써보았다.
우리가 흔히 포스트모더니즘 이라고하면 고전파 계몽주의 로코코 등등 미술사의 한 부분이나 카테고리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 학창시절때 미술이라는 과목에서만 이 단어를 접해서 그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렇게 좁은 개념이 아니고 보다 넓은 개념으로
사람의 생각에 관한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직역하면 (포스트)이후 (모더니즘)현대
이성적인 가치를 높게 치는 현대, 하지만 그 너머로 간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말일까 보자
중세시대(암흑시대)
중세시대는 고대그리스-로마에서 17세기 르네상스 사이를 뭉뚱거려서 중세라고 이야기 하는데
다른말로 암흑시대라고 한다.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인간은 ‘신’이 없다면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왜 일어났지요? – 신의 뜻입니다.
그 이상의 설명을 하지도 못했고 필요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라고 해도 이단심판관이 친절하게 가정방문을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지금이라면 말도 안나왔을 일들이 중세시대에는 정말 자연 스럽게 이루어 졌다.
단두대가 만들어진 이유는 사형집행의 속도가 사형선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며
향수는 위생개념이 없어서 물로 씻기를 멀리하던 사람들의 악취를 감추기 위해서 만들어 진것이다.
정점을 찍었던 일은 마녀사냥인데, 잠깐만 이 이야기만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마녀사냥 당시 유럽은 페스트(흑사병), 대기근으로 유럽 전체가 황폐화 될때였고
종교의 권위는 급격하게 추락을 하였다.
이때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은 ‘돈많은 과부’였다.
돈 많은 과부에게 마녀라는 오명을 씌워 죽여버림으로 희생양을 만들고, 재산을 빼앗아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자기 돈 한푼 안들이고 종교의 권위와 체면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이었다.
르네상스
길고 길었던 암흑시대가 끝나고 르네상스 시대가 왔다.
기존의 종교의 권위에 묻혀서 쳐다보지도 않던 고대 그리스의 이야기들을 재발굴하고 연구를 하며 인간 에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이제 생각을하는데 더 이상 신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예술, 문학, 음악, 과학 모든 방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으며
특히 뉴턴의 고전역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사람들은 세상을 해석할 완벽한 도구를 얻었다고 믿었다.
천체, 행성의 궤적을 계산 할 수도 있게 되자 인간의 미래도 계산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물론 이거는 나중에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증명이 된다.)
르네상스 시대에서의 자신감은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을 심어주게 된다.
사람은 사람 스스로를 구원 할 수 있다.
인간의 합리적 사유에 대한 믿음과, 뉴턴의 고전적 우주관이라는 해석도구, 문명과 인간성에 대한 신뢰
장미빛으로 가득찬 미래가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비 이성의 등장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나서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회의감과 의심이 가득 차기 시작한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민주주의를 통해서 합법적으로 최고권력을 획득하였고, 전 세계를 전쟁통으로 밀어 넣었다.
민주주의를 통해서 사람들은 최선의 지도자를 뽑고 더 나은 미래를 나아가야하는데
민주주의는 나치즘과 파시즘이라는 사생아를 낳았다.
분명 과학을 가지고 문명을 발달하고 사람들을 풍요롭게 해야하는데
만들어 진것은 핵무기, 생화학 무기등
어떻게 하면 사람을 효율적으로 죽일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과학은 성실하게 답을 하였다.
기존에 만들어진 이론과 생각의 부정은 계속해서 일어 났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나오고 엄청난 파급력이 있었는데
사람이 인식 할 수 있는 의식은 정말 부분이고, 무의식이 우리를 결정한다고 한다.
우리는 점심 메뉴를 고르고 다음에 무슨 일을 하는지 결정하는 일조차,
이미 과거에 형성된 무의식에 속박 되어있다.
인간은 식당 메뉴조차 자유롭게 고르지 못하는 존재 였던 것이다.
(프로이트 이론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아들러의 심리학이 대표적으로 프로이트와 반대되는 이론이고, 자세히 알고 싶다면 ‘미움받을 용기’에 아들러의 심리학을 기반으로 구성한 책이 있다.)
과학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상을 해석 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뉴턴의 고전 역학 도구는
미시세계(원자단위)로 들어가면 하나도 들어 맞지 않고, 많은 부분을 더 이상 설명 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고, 무지했던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등장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등장하였다.
사전적인 의미는 이성중심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내포하고 있는 사상적 경향의 총칭이며
기존의 가치(모던)의 부정과 파괴
규칙 이성 효율의 반대로 이어진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나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을 보면 이해가 조금 쉬울 것이다.
소변기가 예술 작품이고, 전화기위에다가 갑각류를 달랑 올려놓고 작품이 이라고 한다.
이성중심의 사회에서 정해놓은 규율이 있다면 (이것은 소변기 이고 화장실에 있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시각으로 보면 다 엿이나 처먹어라고 이해하면 된다. (뭐 어쩌라고? 화장실에 있건 전시회를 하던?)
마지막으로 프랑스 68혁명 – 전면적인 반란을 알아보자
보수주의 자들에게는 지옥의 시작, 진보주의자들에게는 혁명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1968년도 5월에 일어난 68혁명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운동으로 보아도 되며
대표적인 슬로건은
금지함을 금지하라
구속 없는 삶을 즐겨라
혁명을 생각할 때 섹스가 떠오른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건 혁명이 아니다
이것 말고도 보도블럭을 드러내자 해변이 나올지니 등 그 때당시 기준으로는 생각지도 못할 파급적인 주장을 하였으며
대학생들이 중심으로 기존의 권위와 위계질서 사회에 도전이다.
프랑스 68혁명으로 권위 위계적인 사회 분위기 해체, 수직적인 구조에서 수평적 구조로 이동
소수자의 인권, 특히 동성애와 같은 성소수자에 대한 권리 주장이 시작되며
환경보고 개인의 자아 실현을 주장하며 지금의 서구 문화의 기초가 되었다고 봐도 된다.
외국에도 크게 영향을 기쳤으며
일단 프랑스에서는 샤를 드골 정권이 퇴진하였고
미국에서는 히피문화, 베트남 반전운동, 캐나다의 다문화주의 국가 선언, 독일에서는 나치 부역자 청산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며
심지어 소련에서도 이듬애 1월 시위를 하게 된다.
일단 기본적으로 영향을 받은 나라는 선진국이다보니, 당시 한국에서는 68혁명을 받지 않았다.
나중에 90년대 동유럽과 소련이 붕괴되어 구심점을 잃게된 PD계열 학생운동권이
68혁명을 모방해서 한국에 들여올려고 했는데, 한총련 이적단체 지정당하고 공중분해 되면서
한국과는 아에 인연이 없는 운동이기는 하다.
우리가 흔히 서구권에 대해서 개방적이고 집단보다 나를 중시한다고 생각하는데 유럽도 한때는 숨막히는 권위주위와 위계 질서가 꽉잡고 있을때가 있었고, 68 혁명을 시작으로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해체되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여기서는 단순히 소개만 하고 끝나기 때문에 뭔가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끝나는거 같은데, 포스트모더니즘과 68혁명도 상당히 비판을 많이 받는 부분으로 나중에 시간나면 다시 써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