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라고 한다.
과거에 누가 우세 했건간에, 역사는 지금 살아있고, 승리한 사람에 손에 의해서 달라진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과거를 볼려고 하는데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대해서 알아 볼려고 한다. 그리고 프락치 사건 가해자로
우리에게 익숙한 유시민도 있다.
자기 딸은 외고를 보냈지만 외고는 없애야한다.
60대가 되면 뇌가 썩는다. – 유시민
때는 1984년 9월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자교 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학생 등 타학교 학생 및 민간인 4명을 납치하여 고문했다.
증거는 없지만 프락치로 의심 된다는 것이다.
피해자 전기동씨는 서울대에 논문자료를 받기 위해 법대 교수를 찾았다가
유시민을 비롯한 운동권들에게 끌려가서 30여 시간 감근, 물고문을 당하며 인권 유린을 당했다.
그는 당시 학생들에 의해 당한 고문을 떠올리며 ‘나는 학생들에 의해 화장실로 끌려가 물이 담겨진 세면대에 얼굴을 쳐 박혔고 복도에 눕혀 주전자로 입과 코에 물을 퍼붓는 물고문을 당하는 등 중상을 입고 반쯤 미쳤었다’며 ‘죽기 직전에 앰뷸런스에 실려 갈 때 쯤 사건에 가담한 한 학생이 ‘괜찮나’라는 말을 건넸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학생이 유시민이였고, 또 수사기록을 통해 유시민이 적극 가담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 피해자 전기동
유시민을 주축으로 복학생협의회를 구성해서 무단으로 감금한 피해자들을 유시민이 심문 하였으며, 유시민은 감금 폭행 강제 진술 강요등의 주모자로 나섰다.
– 유시민의 신문 조서 앞부분
운동권들은 이 미친 짓을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라고 하며 책임 소재를 당시 정권과 경찰에 돌린다.
경찰이 평소에 학교에 프락치를 심었기 때문에 우리 역시 대항 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잘못없다는 표현이다.
그래서 우리는 프락치 사건이 아닌,
명백한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사건이라고 표현 해야 할 것이다.
정용범씨는 폭행 피해로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기 시작, 현재까지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전기동씨는 폭행 후유증으로 고시 공부를 접었다고 한다. 몸이 아파 책상에 앉아 있지를 못하고 자주 바닥에 드러누워야 했다.
임신현씨는 폭행 이후 대인기피증이 심해졌고 이로 인해 대학 진학을 접었다고 한다.
손형구씨는 현재 해외에 머무르고 있어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유시민은 구속되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004년 4월 17대 총선 때 유시민은 선거 홍보물에서 ‘이 사건 관련자들이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이미 명예회복을 하였다’, ‘이 사건은 전두환 정권이 저를 조작으로 엮어 넣은 사건’이라고 기재하였다.
뻔뻔함의 극치다.
사실 이것 이외에도 당시 운동권은 무법지대처럼 행동하며, 사람들을 감금 고문 살해 역시 서슴치 않았다.
서울역 순경 압사 사건 (순경 4명 버스에 압사)
*문재인은 당시 현장에 있었다.
설인종 고문치사 사건(연세대 고문 살인사건)
*당시 전대협 의장은 임종석이다.
이종권 치사 사건(전남대 남총련 사건)
이석 치사 사건(한양대 고문 실해 사건)
동의대 참사 사건(방화로 인해 경찰 7명 순직)
민주화란 이름의 살인 역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이 되면서, 저 경찰들은 민주화 되서 죽었냐고 비아냥 거렸다.
민주화의 드립은 운동권이 만들어낸 것이다.
오늘날 승리한 역사,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만 영화화 되어 사람에 기억에 남았을뿐
그들이 민주화를 내세우며 죽여버린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살인자 들이 정권을 잡았거든
박종철 사건 역시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역사를 모르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어디에도 없다.